좀처럼 보기 드문 명승부였고 극적인 레이스였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아, 이제 힘들어지나 하고 느끼던 바로 그 순간 이봉주(37삼성전자)의 진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봉주는 처음부터 선두 그룹에서 레이스를 펼쳤다. 처음 10여 명이던 선두 그룹은 한 명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해 25km 지점에서 8명으로 줄었고 35km 지점에 이르러 이봉주와 폴 키프로프 키루이, 라반 킵켐보이, 에드윈 코멘(이상 케냐)과의 4파전 양상으로 변했다. 마라톤 최강국 케냐와 한국의 3 대 1 싸움이었다.
관심은 누가 먼저 승부수를 띄울 것인가 하는 것.
승부를 먼저 건 것은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 최고 기록이 2시간 6분 44초로 가장 빠른 키루이. 이 기록은 이봉주(2시간 7분 20초한국 기록)보다 36초나 빠르고 2006년 로테르담대회 때 것인 반면 이봉주의 최고 기록은 2000년에 세운 꽤 오래된 것. 둘의 기록만으로 볼 때 이봉주의 열세였다.
키루이는 잠실대교를 건너기 직전 오르막이 시작된 35.15km 지점에서 보폭을 빠르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레이스는 이봉주와 코멘, 킵켐보이가 죽 늘어서서 그를 쫓는 양상이 됐다.
36km 지점에서 내리막이 시작됐지만 선두인 키루이와 2위 이봉주의 거리는 계속 벌어져 38.5km 지점에선 100m가량 뒤처졌다.
결승 지점인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전광판으로 레이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올 때 이봉주의 스퍼트가 시작됐다. 둘 사이가 다시 좁혀졌고 이봉주는 40.62km 지점에서 키루이의 왼쪽 옆을 지나친 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고개를 돌려 이봉주를 쳐다보는 키루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승부는 여기에서 갈렸다.
이봉주는 케냐 선수가 계속 빨리 뛸 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규훈(건국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이봉주의 지구력은 유명하다. 키루이와의 심리전에서 뚝심의 이봉주가 승리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