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3년만에 잡은 대본 다시 처음처럼

Posted March. 15, 2007 07:04,   

ENGLISH

여덟 살짜리 에이즈 환자를 생각해 보세요. 어떤 마음이 들까요? 병을 생각하는 의사에서 병자를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을 고민했어요.

마냥 반항아 역에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21일 방영되는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극본 이경희연출 이재동수 목 오후 9시 55분)의 주인공 민기서 역을 맡은 탤런트 장혁(32). 14일 서울 남대문구 힐튼호텔에서 열린 드라마 발표회 후 만난 장혁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선명했다.

3년 만에 공식석상에 오니 위에는 웃고 점잖게 있지만 밑에, 다리는 마구 떨리더라고요.(웃음) 군에서 전역한 뒤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대본연습을 하러 가는데 너무 흥분됐어요. 나중에 체크해 보니 혈압이 다 상승했더라고요. 정말 1996년 처음 데뷔하는 마음이네요.

우여곡절이 많은 만큼 각오도 대단했다. 2004년 그는 송승헌 한재석과 함께 병역 면탈 혐의로 재신검을 받고 그해 11월 입대해 강원 화천군 승리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지난해 11월 전역한 이후 첫 작품이다.

며칠 전 의정부 촬영장에서 촬영을 하고 돌아오는데 혹한기를 뛰고 있는 장병들을 봤어요. 갑자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저 또한 혹한기 훈련을 뛰었고. 군 생활을 해 보니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과거에 잘못은 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상대편 후보가 당신은 너무 늙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대요. 노쇠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경험과 그걸 풀어 갈 자세가 있다고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다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 드라마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의사지만 거만하고 오만방자한 성격을 가진 민기서 역을 맡았다. 기서는 애인이 죽은 뒤 속세를 떠나 외진 섬에 가고 그곳에서 에이즈에 걸린 여덟 살짜리 아이를 둔 미혼모 영신(공효진)을 만나면서 점차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으로 인해 변해가는 남자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잖아요. 고맙습니다는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예요. 따듯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의사라고 생각하면 냉정하고 차가워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기서를 연기하면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인지, 병을 냉정하게 봐야 하는 것이 먼저인지를 두고 고민도 많았습니다. 따듯함이 무엇인지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이었죠.

이 드라마는 상두야 학교가자(KBS2003년), 미안하다 사랑한다(KBS2004년), 이 죽일 놈의 사랑(KBS2005년)의 극본을 쓴 이경희 작가 작품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 여운이 많이 남잖아요. 사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없어요. 크리스마스는 12월이잖아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따듯해 보였던 것은 희망과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 드라마도 에이즈란 병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겁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