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아까 인터뷰 했는데. 어째 또 합니까?
싫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웃음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4일 2006 도하 아시아경기 유도 남자 90kg급에서 금메달을 딴 황희태(28상무사진)는 매트의 개그맨으로 불린다. 목포 출신인 그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개그맨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꿈에 기다리던 금메달을 땄으니 기분이 오죽 좋았으랴. 하지만 싱글벙글하던 얼굴 표정이 잠깐 굳어진다. 부모님 얘기가 나왔을 때다.
황희태는 부모가 없다. 대학 1학년 때 어머니가 신장 이상으로 세상을 떴고 2년 뒤 아버지마저 동맥경화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부터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섯 명의 누이들 손에서 컸다. 열 살 위인 쌍둥이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그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 같은 누나들이 있었지만 어머니일 수는 없었다. 황희태는 점점 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성격을 바꾸게 해 준 것은 유도였다. 유도 실력이 늘자 자신감이 생겼고 쾌활해졌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2004년 위기가 찾아왔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황희태는 준결승에서 이즈미 히로시(일본)에게 경기 종료 10여 초를 남기고 역전 업어치기 절반을 내 준 것. 금메달이 멀어진 마당에 동메달 결정전은 포기하다시피 했다. 충격을 받았고 운동을 포기하려고 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다시 힘을 준 것은 상무를 맡고 있던 전만배 감독이었다. 전 감독의 격려로 황희태는 다시 도복을 입었고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금메달도 거머쥐었다.
황희태는 상무에 입대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제대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는 수원시청 유니폼을 입는다. 짧은 방황을 끝내고 유도 대들보로 다시 선 그에게 남은 목표는 확실하다.
세계선수권, 아시아경기에서 다 금메달 따봤습니다. 이제 올림픽이 남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