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풍일(63)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6년간 근무하다 2년 전 퇴직했다. 한국형 경수로사업의 원자로 설계 전문가인 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파견돼 10년간 원전국장을 맡을 정도로 이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내주부터 원전 설계기술자문업을 하는 벤처기업 GNEC기술사무소에 출근할 꿈에 부풀어 있다. 정부 출연 연구소를 퇴직한 고급 과학기술인력과 기술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짝짓기해 주는 테크노 닥터 사업 덕분이다.
과학기술부가 7월 테크노 닥터 사업 공고를 하자 사람이 필요하다며 신청한 중소기업은 282개사, 평생 쌓은 노하우를 활용할 기회를 달라는 퇴직 과학자는 129명이었다. 이들이 맞선을 본 결과 79명이 새 직장을 얻게 됐다. 급여는 월 250만 원. 정부가 200만 원, 기업이 50만 원을 각각 부담한다. 다시 출근하게 됐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6개월 뒤 취업자들의 실적을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한 사람이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최대 3년이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니 엄격한 관리는 당연하다.
외환위기 때 정리 해고된 대우자동차 근로자 중 한 사람은 복직 후 시끄러운 곳에 가야 할 경우엔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 양말 속에 넣어 뒀다고 말했다. 혹시 걸려올지 모르는 복직하라는 전화를 놓칠까 봐 불안해서였다고 한다. 복직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퇴직 후 재취업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가슴 찡한 일화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고용유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재고용 시장이 취약해 한번 퇴직하면 재취업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근로자는 해고는 곧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해고가 어렵다 보니 기업은 고용 자체를 꺼린다. 노인 일자리 문제도 재고용 시장이 없어서 더 악화되고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도 이념과 구호에 매달리기보다는 이들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 직장을 얻은 분들이 소명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굵은 땀을 흘리기를 축원한다.
허 승 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