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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내 고향 꿈엔들 잊힐리야

Posted August. 15, 200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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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다 짚으로 엮어 놨던 건데 이젠 양철 지붕이 됐네.

13일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앞. 군위안부 문필기(81) 할머니는 고향인 경남 진주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 할머니는 반나절이면 직접 내려가 볼 수 있는 고향을 왜 사진을 통해 보면서 눈물지을까.

고향에 가면 동네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기억들만 물어 봐. 나만 없으면 쑥덕쑥덕하는 사람들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어.

고향 사람들의 냉대에 30여 년 전 고향을 등진 문 할머니는 가끔 어머님 산소만 찾아가 소주 한잔 올리고 서둘러 고향을 떠나길 수십 차례. 아는 사람과 눈길이 마주칠까 도둑고양이처럼 고향을 방문하는 바람에 고향산천을 볼 겨를도 없었다.

군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사는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 집은 광복절을 맞아 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이들의 고향모습을 담은 사진전 뿌리와 한을 14일 열었다.

나눔의 집의 요청을 받은 두 명의 사진작가가 한 달간 전국을 돌면서 군위안부 할머니 17명의 고향 풍경 300장을 담아와 이들에게 선물로 드린 것.

이옥선(79) 할머니는 아예 고향에 가지 않는다. 일본군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2000년 귀국해 대한민국 국적을 되찾은 그. 그러나 58년 만에 찾은 고향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일본군들이 성적학대에 더해 그의 팔뚝과 발목을 칼로 그을 때도 반드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생명줄을 놓지 않았던 그였지만 고향 사람들의 냉대는 이 할머니에게 또 다른 한을 심어 놓았다.

고향 친지들이 여기 오지 말고 그냥 거기(나눔의 집)에서 살다 죽지 창피하게 뭐 하러 오느냐 하더라고. 칵 그 자리에서 죽고 싶더라고.

숨이 막히는 더운 날씨에도 할머니들은 사진 속의 고향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손으로 사진을 더듬고 또 더듬는다.

고향 사진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던 박옥선(82) 할머니는 옆의 할머니에게 여기 이 다리를 건너면 절이 있고, 이쪽으로 가면 아리랑 비석도 있다며 고향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임우선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