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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괴물과 FTA

Posted August. 07, 2006 05:52,   

한국 영화계가 수입 외화에 의존해 연명하던 시절이 꽤 오래 지속됐다. 영화인들은 외화 수입 쿼터를 따내기 위해 영화관에 걸리지 않고 바로 창고로 직행하는 한국 영화를 찍었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직배사(UIP)가 한국 영화시장에 진출하자 영화인들은 당장 망할 것처럼 맹렬한 투쟁을 벌였다. 직배영화 안 보기 운동이 일어나고 직배영화 상영관에 뱀을 푸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길러준 것은 시장 개방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 이어 괴물로 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620개 스크린에서 괴물이 출몰하는데도 스크린 독점 논란 때문에 필름을 더 못 줄 정도라니, 가뿐하게 왕의 남자 기록(1230만 명)을 깰 듯싶다. 왕의 남자가 히트할 때 이준익 감독은 내 영화가 잘되는 것은 좋지만, 스크린쿼터 축소의 명분을 줄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1인 시위에 참여했던 봉 감독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공이 잘 맞아도 핸디캡 줄어들까 봐 걱정하는 아마추어 골퍼들 같다.

스크린쿼터는 자국()영화의 의무 상영 기간을 두는 무역 장벽으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마당에 그대로 둘 수는 없다. 현재 스크린쿼터를 시행 중인 나라는 스페인 그리스 브라질 등 8개국이다. 중국과 인도는 외화수입 규제를 통해 자국영화를 보호한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폐지로 문화 주권이 상실된다고 주장하지만, 배부른 기득권 지키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토종 할인점이 월마트와 까르푸도 이기고, 김밥집이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맥 못 추게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충격파가 훨씬 컸던 할리우드 영화 직배를 이겨 낸 우리 영화계가 국산영화 의무상영일이 146일에서 절반인 73일로 축소됐다고 해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내 시장에서 보호막 없이도 할리우드 영화의 공격을 막아 낼 경쟁력을 갖춰야만, 세계시장으로 한류를 뻗게 하는 영화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