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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로잡은 풍경 바로 너로구나

Posted July. 29, 20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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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빈과 김태희가 자장면을 먹을까 스파게티를 먹을까를 두고 싸우는 들판에 펼쳐진 길(LG사이언 TV 광고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해수욕장의 야경(포스코경북 포항시 북부해수욕장). 우울한 눈빛의 조인성이 서 있는 잿빛 벌판(후지 파인픽스경기 화성시 어섬비행장). 한석규가 친정식구의 상을 당한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며 걷는 향나무 숲길(교보생명충남 금산군 보석사 입구).

하루에도 수십 번씩 TV 광고를 보면서 궁금한 것 하나. 도대체 저 좋은 장소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영화나 드라마, 광고의 배경 장소를 찾아내는 이들을 로케이션 매니저라 부른다. 아름다운 곳, 가볼 만한 곳을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의 일은 시나리오나 콘티를 보고 글자나 그림으로 표현된 장소를 현실에서 찾는 것. 수많은 장소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어야 한다.

올인의 제주도 섭지코지나 겨울연가의 남이섬처럼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는 금방 명소가 되지만 TV 광고의 촬영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잠깐 나오니 드라마에 비해 덜 어려울 것 같지만, 비교적 헌팅 기간이 긴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광고는 내일 찍으니 섭외해 달라는 부탁도 적지 않다.

광고 로케이션 매니저인 이성범(44) 씨가 농심 켈로그 광고를 맡았을 때의 일. 감독은 청정 지역의 옥수수밭에 다리가 있고 산이 보이는 곳을 요구했다. 전국을 무작정 6일 동안 돌아다녔다. 먹고 자는 시간 빼고 5000km 이상을 운전해 결국 강원도 정선 부근에서 적합한 장소를 찾아냈다. 정선 부근의 동강만 20번을 가봤다는 그는 전국의 국도를 줄줄 꿰고 있다.

오지에서만 좋은 배경이 나오는 게 아니다. 김아중이 나오는 해태 생생감자칩은 경기 고양시 일산의 호수공원에서, 안성기 김정은 박해일의 맥심 커피믹스는 서울 하얏트호텔 정원, 조승우가 나오는 KT&G 택시 편은 경기 파주시 이채쇼핑몰 앞, 임수정이 아는 언니에게, 최민식이 선생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박카스 디 광고는 각각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카페 느리게 걷기 앞, 연세대에서 촬영됐다.

로케이션 매니저 김태영(34) 씨는 산이 있고 물이 흐르는 자연 공간은 정선이나 태백, 오래된 집은 충남이나 경북(안동)에서 많이 찍으며 현대적인 공간은 90% 이상이 서울 청담동이라고 말했다. 김신호(32) 씨는 들판이나 오래된 사찰은 전남에 많고 해변은 태안반도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매일 여행만 하고 다녀 얼마나 좋으냐는 말을 자주 듣는 이들은 많은 장소를 알고 있어도 한번도 즐겨본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바닷가를 찾아도 사진 찍고 구상하기 바쁘지 바닷물에 발 한번 못 담그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로케이션 매니저는 최근 유망직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자리잡기 전까진 수입도 적고 생활도 불규칙하다. 공식 교육 기관도 없어 관련 분야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은 뒤 로케이션 매니저 밑에 들어가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여행을 즐기고 사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원만하게 대처할 수 있는 협상가의 자질도 필요하다.

취직을 위해 고층건물 유리창에 이력서를 붙이는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던 카스 맥주 광고의 경우 건물주들이 촬영에 반대해 어려움을 겪었다. 김민준이 유치원생들의 길 건너기를 도와주는 KTF 광고는 동아일보사 앞 횡단보도에서 2차로를 막고 찍었는데 지나가는 시민들의 항의가 대단했다. 이 모든 일의 해결은 로케이션 매니저의 몫이다.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