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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그대 가슴을 흔든다

Posted June. 15, 2005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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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10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은 왜 이 작품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억 명 이상의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왔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무대다.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지하에 숨어 사는 음악 천재 팬텀, 팬텀 덕분에 무명의 코러스 걸에서 프리마돈나가 된 크리스틴, 크리스틴의 약혼자 라울. 관객들은 19세기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사랑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수백 벌에 이르는 화려한 의상, 객석 위로 수직 상승하는 1t에 가까운 대형 샹들리에, 촛불 사이로 배가 미끄러지듯 흘러가도록 하는 특수 효과, 스펙터클한 가면무도회.

130분 동안 눈과 귀는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만, 1막의 하이라이트인 샹들리에 추락 장면에서 공연장 구조상 샹들리의 낙하거리가 짧은 탓에 탓에 속도가 느려진 것은 아쉬웠다.

이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특히 첫 곡이자 크리스틴의 단독곡인 나를 생각해줘요와 주제곡 오페라의 유령, 밤의 음악, 오직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곳 등은 뮤지컬의 성패를 가늠할 만큼 주연 배우들이 반드시 잘 불러야 하는 곡들.

크리스틴 역의 마니 랍은 청순한 미모로 주목받았으나 떨림이 많은 성악적 발성이라 원조 크리스틴 사라 브라이트만의 청아하고 맑게 뽑아 올리는 노래에 익숙한 관객에겐 다소 낯설었다.

2막 9장의 크리스틴과 라울(제로드 칼란드), 그리고 팬텀의 3중창은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하지만 관객 전원의 기립박수와 다섯 번에 걸친 커튼콜은 단연 팬텀 역의 브래드 리틀을 향한 것이었다. 브로드웨이 등에서 팬텀 역을 1800회 이상 맡아온 그는 110% 팬텀이었다. 그는 190cm의 거구에서 뽑아내는 풍부한 성량, 바리톤과 테너의 영역을 넘나들며 저음에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는 가창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밤의 음악 등을 듣다보면 얼굴 절반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음에도 노래 속에서 연기가 묻어나 마치 그의 생생한 표정을 눈으로 보고 있는 듯 했다. 특히 크리스틴과 키스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팬텀이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사랑의 고통을 표현해 낼 때 관객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2001년 국내 배우들로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과의 차이이자 당시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도 바로 이런 섬세한 연기였다.

탁월한 팬텀 때문에 다른 배우가 빛을 잃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팬텀만으로도 이번 공연을 권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공연은 9월1일까지. 02-580-1300



강수진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