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우유50개 갖다놓고 먹으래요

Posted June. 02, 2005 06:45,   

ENGLISH

대구 달서구의 A중학교 2학년 최모(15) 양은 며칠 전 무척 당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부모가 생활보호대상자여서 급식비를 면제받는 최 양은 이날 학교에서 두 달치 급식인 200mL짜리 멸균우유 50개를 지급해 방과 후에 상자에 담아 들고 왔다.

최 양은 멸균우유라 집에 두고 먹어도 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상자째 우유를 줘 창피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 독자 P 씨의 제보로 알려지게 됐다.

P 씨는 이웃인 최 양의 부모가 아이가 멸균우유 상자를 집에 들고 와 속상하다고 하소연을 하더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몸을 튼튼하게 한다는 취지로 지급되는 무료 우유 급식이 식량 배급을 받는 듯한 느낌을 줘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준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본보가 제보를 토대로 전국적으로 취재한 결과 이 같은 일이 최 양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유 단체급식을 하지 않는 학교의 경우 대부분 비슷한 현실이었다.

농림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우유 소비기반을 넓히고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초등학교에 이어 올해부터는 중학교까지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우유 무상급식을 확대했다. 올해 지원대상 학생은 전국 16개 시도의 초중학생 28만 명.

그러나 우유 무상급식 대상자가 이 학교처럼 1030명에 불과할 경우 학교에서 날마다 한 개씩 주는 게 번거롭기 때문에 한꺼번에 나눠주고 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통해 멸균우유를 제공하는 경우도 보름치 이상은 한꺼번에 학생에게 주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으나 배달 비용 등의 현실적 한계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

대구 남부교육청 관계자는 집으로 배달하는 게 원칙이지만 대상자가 적으면 우유공급업체들이 학교에 일괄적으로 배달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우유 단가에 배달 비용까지 포함돼 있지만 가정배달을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의 한 우유공급업체 측은 담당 구역 안에 배달할 집이 200가구 정도는 돼야 한다며 몇 십 명 가지고는 일일이 배달하기 어려워 학교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농어촌의 경우에는 우유 무상급식 대상 학생이 적어 일반 학생들도 억지로 우유를 먹어야 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충남 서천군의 B중학교의 경우 8명이 우유 무상급식을 신청하자 근처의 우유대리점에서 수가 적어 배달할 수 없다고 통보해 결국 일반 학생까지 포함해 50여 명이 함께 우유를 먹고 있다. 물론 일반 학생들은 우유 값을 낸다.



이권효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