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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금

Posted August. 25, 20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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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땀이라고 말하고 싶다. 낯선 타향에서 정든 가족과 떨어진 채 보낸 3년여 세월. 올림픽을 앞두고 주위의 관심 한번 없었다. 하지만 맨손으로 시작한 그들은 마침내 톱10의 쾌거를 엮어냈다.

25일 마르코폴로승마장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승마 장애물 비월 단체전 결선 라운드. 최명진 감독(48)과 우정호(33) 황순원(30) 손봉각(30) 주정현(30이상 삼성전자)은 9위로 경기를 마친 뒤 우승이라도 한 듯 서로 껴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 승마 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뒤 10위 이내에 드는 값진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너무 기쁘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잘해 준 선수들이 고맙다며 울먹였다.

출전 16개국이 1라운드를 치러 상위 10개국이 결선 라운드에 진출해 최종순위를 정하는 이 종목에서 한국은 주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했던 88년 서울 올림픽 때 꼴찌에 그쳤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최하위로 결선은 꿈도 꿀 수 없었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마필 부상으로 도전조차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번 대회도 처음엔 출전조차 어려워 보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까다로운 퀄리파잉을 거친 15개국(나라당 4명)에만 출전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기 때문.

이 종목에서 2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던 한국 승마는 아테네 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 2001년 4월 독일 뮐렌에 훈련 캠프를 차렸다. 연말에 두 차례 한국을 찾았을 뿐 나머지 시간은 모두 독일에 머물러 결혼한 최 감독과 황순원은 별거 아닌 별거 상태였고 다른 선수들도 친구 한 명 없는 외로운 객지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말만 생각했어요. 대화도 늘 말이 화제였죠. 오전 오후 말을 타고 밤에는 유럽 우수 선수들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연구를 거듭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메달을 이끈 독일의 세계적인 코치 쇼케 뮐러를 영입해 선진 기술에 눈을 떴다. 최 감독은 선수 지도는 물론 한 달에 한 번 3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뒤셀도르프에 가 김치와 쌀, 밑반찬 등을 사왔다.

한국은 지난해 6월 독일 아헨에서 열린 국제장애물경기에서 출전 46개국 가운데 일본에 이어 단체전 2위에 올라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당시 승마 강국 영국이 출전권을 놓쳤고 비유럽권에서는 한국 외에 미국 일본 뉴질랜드만 끼었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소속팀 삼성전자 승마단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독일 전지훈련에 쏟아 부은 돈이 무려 120억원.

최 감독은 남들은 웃을지 몰라도 승마에서 9위면 다른 종목 메달과 다름없다면서 다음 베이징 올림픽 때는 메달도 노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