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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족, 보상 합의못해 장례일정 미정

Posted June. 27, 2004 22:18,   

김선일씨의 시신이 부산의료원에 안치된 지 하루가 지난 27일 유가족들은 애타게 우리 선일이를 외치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부산의료원에는 빈소가 차려진 23일 이후 이날까지 4000여명의 조문객이 찾았으며 유족과 정부측 대표는 장례 절차 및 보상 등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빈소 표정=김씨의 시신은 26일 오후 7시25분경 군수송기 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해 별도의 검역절차 없이 경찰의장대에 의해 대기 중이던 검은색 캐딜락 운구차로 곧바로 옮겨졌다.

운구행렬이 부산시내를 거쳐 부산의료원으로 향하자 도로변의 많은 시민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부산금정구청 앞에선 30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김씨의 원혼을 맞았고, 일부 시민들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든 채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김씨의 시신이 26일 오후 8시35분경 부산의료원에 도착하자 여동생 정숙씨(33)와 큰누나 향림씨(41)는 관을 부여잡고 선일아, 여기가 부산이다. 네가 살았던 부산이다. 눈 좀 떠 봐라며 통곡했다.

아버지 김종규씨(69)와 어머니 신영자씨(59)는 주위의 만류로 나가지 않은 채 유족 휴게실 구석에 앉아 오열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시신과 함께 김씨가 평소 아끼던 유품도 도착해 유족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김씨의 유품은 평소 김씨가 모아 둔 편지와 메모, 사진 등이 든 종이상자를 비롯해 성경, 사전, 통기타, 옷가지, 음악CD 등 30여점이다.

김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26일부터는 조문객의 발길이 더욱 늘었고 27일에는 휴일을 맞아 김씨의 얼굴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찾아와 조문했다.

정치인은 물론 어린 학생에서부터 80대 노인까지 성과 연령에 관계없이 전국 각지에서 조문객들이 찾아와 마치 자신들의 가족이 희생된 것처럼 슬퍼했다.

장례보상 문제=김씨의 장례는 기독교식 가족장으로 확정됐지만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보상 문제와 맞물려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김씨에 대해 최대한의 보상과 예우를 해주겠다고 밝혔지만 국립묘지 안장과 가나무역의 책임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27일 오전 10시반부터 부산의료원에서 열린 협상테이블에는 정부측 대표로 행정자치부 최종만 안전정책관과 유족측 자문변호사인 이은경 변호사, 유족대표인 장진국씨, 김구현 부산시 행정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와 유족 양측은 보상과 예우에 대한 협상을 먼저 마무리한 뒤 장례기간, 장지 등 장례 절차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 7시 2차 협상에서는 유족측이 논의한 협상안을 다시 정부측에 제시했으며 최 정책관은 유족들의 요구사항이 최대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은 28일 오전 3차 협상을 갖고 이견을 조율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장례 일정을 발표하기로 했으며 보상안에 대해서는 발표 여부를 논의 중이다.

한편 정부는 김씨 유족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는 법규정이 없더라도 특별한 사례라는 점을 감안해 예외로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또 정부는 보상의 책임이 있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귀국하지 않고 있어 협상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에 먼저 가나무역이 부담해야 할 보상금도 지급한 뒤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휘 석동빈 silent@donga.com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