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견을 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한결같이 국가와 지역의 앞날을 위한 선택이라느니 정치개혁의 대의()니 하는 말들을 입에 담았다. 이들을 받아들이는 쪽은 고뇌에 찬 결단인 듯 치켜세웠다. 그러나 지켜보는 국민은 씁쓸하기만 하다. 선거 때만 되면 봐왔던 별로 유쾌하지 못한 풍경이 이젠 정말 신물 난다. 언제까지 이런 한국적 후진정치의 슬픈 소극()을 감상해야 하나.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탄핵 역풍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내리막길을 걷고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부터다. 주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이다. 일부 의원들의 동참 조짐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열린우리당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외부인사들도 기웃거리는 모습이다. 일부는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한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의 말이 재미있다. 그는 지금 와 입당하겠다는 사람은 다 철새 아니냐며 열린우리당이 밤섬도 아니고 무슨 철새도래지 만들 일이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을 철새라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철새는 적절한 기후 기온 먹이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이동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질서를 위반하지 않는다. 새 연구가인 경희대 윤무부 교수는 말한다. 철새는 자신의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가령 청둥오리 떼에서 한 마리가 이탈해 기러기 떼에 합류하는 일이란 결코 없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정치신조도 내팽개친 채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정치인은 철새의 철학부터 배워야 한다.
열린우리당으로 말을 갈아 탄 사람들은 탄핵의 부당성을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나 소신이 그랬다면 탄핵안 추진 과정에서부터 행동해야 옳았다. 과연 탄핵안 가결 후 잘했다는 여론이 많았어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재작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옮긴 의원들을 양지()만 찾아다니는 변절자라고 꾸짖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정직하다. 그렇지 않고 박수만 친다면 열린철새당이라는 비난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철새들은 그 말도 모욕으로 듣겠지만.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