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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통 기업' 계좌추적 들이대자 "술술..."

Posted March. 08, 2004 22:43,   

여야 각 진영에 제공한 불법 대선 자금을 자백하면 선처해주겠다.(대검찰청 수사팀 검사)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증거도 없이 이라크를 무차별 폭격한 미국 식으로 수사하면 기업만 골병든다.(A기업 임원)

지난해 11월 7일 오후 11시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1층 조사실. 대선자금 수사팀의 한 검사와 A기업 임원이 팽팽한 긴장속에 기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날 밤 결국 별다른 진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 임원을 돌려보냈다.

당시 검찰은 SK에 이어 삼성 LG 현대자동차 롯데 등으로 수사를 확대해 대선자금 전모를 밝혀내겠다고 선언한지 한달이 지났지만 갖가지 계좌 추적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거의 없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정치권의 보복 등을 의식해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던 것.

지난해 11월 말경 검찰에 소환된 B기업 임원에 대해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대선 자금을 내놓지 않으면 비자금 수사를 통해 기업의 비리를 근본적으로 파헤치겠다며 마지막 압박 카드를 내놓았다.

그러자 그 임원은 조폭의 행동대장도 아니고 조선시대의 사헌부도 아닌 법률가 집단이 아무런 단서 없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느냐며 항변했다.

수사팀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12월초 수사의 실마리를 정치권에서 찾는 등 전술을 수정한 뒤 부터였다. 당시 수사의 단서는 대선 한달 전 SK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 구조조정본부장 등에도 전화를 돌려 대선자금을 모금했다는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의 진술이 거의 전부.

검찰이 주요 공격 목표였던 노무현() 캠프와 한나라당의 계좌를 역추적하면서 의외로 수사가 쉽게 풀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기업간 진실게임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법률 고문을 지낸 서정우() 변호사가 긴급 체포된 지난해 12월 8일부터 풀리기 시작한 것.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대선 때 정신 없이 흘러 들어온 돈이었던 만큼 자금 관리도 허술해 돈의 행방이 쉽게 드러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말까지 끝내겠다던 기업 수사를 올해까지 미룬 채 기업 임원들을 불러 노 캠프에 제공한 불법 자금을 조사했으나 저항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최근까지 검찰에 소환된 삼성 구조본의 김인주() 사장은 수사팀이 노 캠프에 제공된 자금에 대해 추궁을 시작하자 음식물을 토하며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사가 장기화되자 검찰 수사비도 모자랐다. 이 때문에 수사팀이 저녁에 김치찌개만 주문하자 음식점에서는 매일 저녁 지프로 찌개를 대량 배달해 검찰청사 엘리베이터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피의자 참고인 등 구속된 일부 피의자들은 검찰이 주문한 음식이 싫어 서초동에는 정말 가기 싫다고 실토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126일 동안 외출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문효남()대검 수사기획관과 남기춘() 대검 중수1과장은 이번 수사 기간 몸무게가 38kg씩 늘었다.



정위용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