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50년 전인 1853년 7월 8일.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인 M C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에도만(현 도쿄만) 앞바다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했다. 당시 집권세력인 에도막부는 함포를 쏘아대는 미군 함대의 위세에 눌려 항구를 여는데 동의,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150년. 미국은 세계의 슈퍼파워로 군림하고 있고, 서양의 선진 문물을 적극 받아들인 일본은 우여곡절 끝에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부자나라의 반열에 올랐다.
페리개항은 이처럼 일본의 근대화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지만 미국의 일방 독주가 심화되면서 미일관계를 바라보는 일본의 속내는 복잡하다.
페리개항 다양한 행사=양국에서는 이달부터 내년 초에 걸쳐 페리개항 및 화친조약과 관련한 학술회의와 문화행사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17일 페리제독의 고향인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서 열리는 축제에는 150년간 이어져온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처음으로 참가할 계획.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출신지로 150년 전 개항의 관문 역할을 한 요코스카()항에서는 다음달 1일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개항제가 열린다.
양국은 미일화친조약의 체결을 기념해 내년 4월 워싱턴과 요코하마에서 대규모 기념식도 계획하고 있다.
미일관계의 두 얼굴=미국과 일본은 페리개항 이후 협조와 대결을 거듭하며 발전, 현재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GDP 순위는 미국과 일본이 세계 1, 2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GNI)은 일본이 3위, 미국이 5위다(2002년 세계은행 통계).
일본은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이 6월말 현재 5456억달러로 45개월 연속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들어 군사외교적인 면에서 양국간 밀월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는 추세. 일본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자 일찌감치 미국 지지를 선언했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도 결정했다.
우익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페리제독의 등장을 양국의 운명적 만남으로 비유하면서 미일동맹은 세계의 안정을 위한 기초라고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양국 동맹은 지구적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일방적 대미 추종외교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관련한 정부의 처신에 대해 일본은 금붕어의 똥처럼 미국의 꽁무니만 따라다녔다고 비판했다.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는데다 미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이란유전 개발에 제동을 걸면서 일반 국민의 대미 감정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친근감을 표시하면서도 마음으로 거리감을 두고 싶어 하는 일본 특유의 아메리카 콤플렉스는 양국 정부의 외교적 밀월과 별도로 오히려 심화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