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 27명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꿔주기를 내용으로 한 선거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의원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골격인 행정단위를 허물겠다는 이기적이고도 무책임한 행태다. 이번 개정안에 서명한 의원들의 지역구 중 상당수가 올해 말이 시한()인 선거구 획정에서 인구 하한선 미달로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들의 속셈은 뻔하다. 인근 지역에서 부족한 유권자를 꿔와서라도 자신의 지역구를 살리고, 현역의원의 프리미엄을 활용해 계속 의원배지를 달아보겠다는 게 아닌가.
헌법재판소는 2001년 10월 투표가치의 평등성을 위해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최대 3.65 대 1에 달하는 현행선거법에 사실상 위헌인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리고 2003년 말까지 3 대 1 이하로 낮추도록 했다.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3 대 1로 할 경우 지역구 최소인구는 10만500011만명으로 예상되는데 이번에 선거법 개정안을 낸 의원들은 거기에 부족한 수를 인근지역에서 꿔와 지역구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헌재의 취지도 인구 등가성에 있는 만큼 지역 유권자의 일부 조정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시군구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단위가 붕괴돼 국정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행정구역 개편을 해야 하는데 이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또 지역구 유지 명분으로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인근지역의 유권자를 꿔와 지역구를 유지할 때 과연 어떤 지역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은 이처럼 상식이나 원칙에 맞지 않는 전형적인 게리맨더링 법안이다. 따라서 개정안 제출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의원 꿔주기에 이어 유권자 꿔주기까지 있어서야 되겠는가. 지금 여야가 서두를 일은 선거구 획정에 필요한 선거구제도 및 의원정수를 확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연말까지의 시한을 맞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