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은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 등 4개의 산을 빙 둘러 연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성벽의 총 길이는 40여리, 로 환산하면 17이었다고 하는데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다. 성곽에는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을 만들어 지방 8도와 통하도록 했다. 조선시대 이 문들은 밤 10시가 되면 종소리와 함께 일제히 닫혔으며 새벽 4시에 다시 열렸다. 오늘날 이 4대문 가운데 남대문으로 불리는 숭례문, 동대문으로 불리는 흥인지문이 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을 뿐 서대문과 북문은 시민들에게도 생소하다.
돈의문이라는 명칭의 서대문은 일제침략 이후인 1915년에 헐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로확장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 위치는 신문로 2가 강북삼성병원 앞 도로 위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1396년 조선조가 성곽을 신축할 당시 서대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태종 13년(1413년)의 기록을 보면 돈의문은 사직동 고개에 있었으며 이후 두 번에 걸쳐 위치가 옮겨졌다. 한편 북문인 숙정문은 청와대 부근인 삼청공원 뒤편에 있으나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다.
서대문에는 여러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반군들이 입성을 한 것도 서대문이었으며 이들이 관군에 쫓겨 도망간 곳도 서대문이었다. 이괄 등이 서대문으로 빠져나가려 할 때 사람들은 미리 문을 닫아 퇴로를 차단했다. 시민들이 반군을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서대문은 중국으로 가는 관문이자 한강을 거쳐 각종 물산이 모이는 마포와 연결되어 있어 부근에 큰 시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일본인 낭인들이 경복궁을 급습하기 위해 택한 것도 바로 서대문이었으니 나라를 잃은 설움도 서려 있었다.
서울성곽 복원사업에 따라 돈의문이 복원된다고 한다. 서울 도성은 풍수지리와 오행을 면밀히 따져 세운 곳이다. 특히 북문인 숙정문은 음기가 센 곳으로, 남대문인 숭례문은 양기가 강한 곳으로 해석되어 큰 가뭄이 들면 조정에서 남대문을 닫아 놓고 북문을 계속 열어 놓았다. 북문은 수백년에 걸쳐 문을 닫아놓은 채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문을 열 경우 음기가 강해져 여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했다나. 서대문 복원은 이처럼 풍수지리에 입각한 서울의 역사성을 되살리는 의미가 있지만 복원될 위치가 도로 한복판이라고 하니 교통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복원에 앞서 만반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