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서 1821일 열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6차 협상이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함으로써 일단 결렬됐다.
두 나라는 막판 걸림돌로 떠오른 금융 및 서비스분야에 관해 24일까지 e메일을 통해 최종의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양국 모두 기존 입장을 철회할 가능성이 낮아 칠레와의 FTA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물론 이번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책임을 한국측에만 돌릴 수는 없다. 협상 실패의 직접적 원인은 칠레가 막바지에 금융 및 서비스분야를 제외하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동안 통상협상 실패 때마다 자주 지적돼온 관련부처간 손발 안 맞기 등 난맥상을 이번에도 드러냈다.
협상타결에만 집착한 외교통상부외교부는 제네바로 떠나기 전 이번 회담에서 가서명한다고 밝혀 조바심을 드러냈다. 또 협상이 끝나지도 않은 20일에는 핵심쟁점에 모두 합의한 만큼 내일 새벽이면 가서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리 카드를 내보여 협상력을 떨어뜨린 이런 태도는 칠레가 금융분야 제외를 역제안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협상을 깨도 좋다며 고압적 자세를 취한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또 사과와 배라는 큰 걸림돌이 없어진 만큼 사소한 것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이 칠레는 물론 재정경제부에서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모른 채 협상에 나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칠레가 막바지에 금융분야를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칠레의 성동격서()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과거 농업관련 협상 때도 일부 국가는 진짜 관심사는 숨겨둔 채 다른 이슈로 벼랑끝 협상을 하다가 양보하는 척하면서 막판에 실리를 챙기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일부 경제부처에서는 외교부가 국가 실익을 챙기기보다 서명하고 사진 찍는 일에 집착한다며 불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뒷짐지다 뒤늦게 뛰어든 재경부협상 대표를 맡지 않았지만 재경부의 자세에도 문제점이 많다.
재경부가 막판에 칠레의 금융 및 서비스 분야 개방에 완강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 때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재경부 당국자는 솔직히 칠레의 금융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을 위해서도 금융부문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지금까지 외교부에 대해 금융분야의 중요성을 한번도 공식 제기한 적이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6차 협상이 실패한 뒤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면 재경부가 왜 4년간의 협상기간에 입을 다물고 있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재경부는 또 금융부문은 협정발효 후 나중에 다시 논의하자는 선까지 양보했는데도 칠레가 거부할 줄은 몰랐다고 말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음을 드러냈다. 심지어 이번에 칠레가 협상항목에서 빼자고 제안한 외국인투자촉진법(DL600)과 관련해서는 재경부조차 DL600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