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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살이 6일째 밤이 두려워요

Posted September. 06, 2002 23:03,   

강원 수해지역에는 5일 오후부터 다시 비가 내렸고 바람도 거셌다.

낯선 이웃집에서, 강변에 친 텐트 안에서, 콘크리트 냄새 풍기는 교실에서 이재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지친 몸을 뉘었다.

이날 오후 6시경 강원 삼척시 미로면 하정리. 전체 50여 가구 중 겉으로나마 성한 집은 대여섯 채뿐인 수해의 참상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지난달 31일 하정 1반과 2반 사이를 흐르는 오십천이 범람해 전기, 통신, 물이 모두 끊긴 지 엿새째. 미로면으로 통하는 미로교도 무너져 4일에야 군 헬기를 통해 구호품을 받았다.

오십천변 모래밭에 텐트를 친 김거현(62) 김순영씨(56) 부부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불을 밝힐 양초도 없었다. 오십천이 범람하던 날 밤 맨발로 옷만 걸치고 뛰쳐나왔다. 집은 무너지고 첫 수확을 앞둔 포도밭 1600여평은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았다.

모래 위에 돗자리만 깔고 그 위에 이불 한 채가 전부인 텐트가 바람에 몹시 흔들렸다.

바람이 더 세게 불면 여기서도 쫓겨나겠지라는 남편의 말에 컨테이너박스가 가장 필요해요라고 부인이 거들었다.

집이 그런대로 성한 이웃을 전전하며 잠을 잤지만 몸도 마음도 불편해진 4일 서울에 사는 경찰관 외아들이 텐트를 짊어지고 찾아왔다.

추석 때 다시 오겠다는 걸 극구 말렸어요. 잘 때가 있나 먹을 게 있나. 말을 잇지 못하던 부인 김씨는 그래도 오늘은 자원봉사자가 가져다 준 주먹밥을 먹어서인지 부자가 된 기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을이 완전히 어둠에 덮인 오후 7시경 오십천 너머에서 이은순씨(51)가 피우는 담뱃불이 반짝였다.

이씨의 집은 진흙이 허리까지 찼다. 이씨와 부인 박명희씨(51)는 처마 밑 1평 공간에 블록 8짝을 놓고 그 위에 베니어판을 깔아 간이침상을 만들었다. 비만 겨우 피할 뿐 바람은 고스란히 맞으면서 엿새를 버텼다.

3일 마을 노인들이 삼척시청까지 네다섯 시간을 걸어가서 굶어죽겠다고 사정하니까 다음날 시장이 헬기를 타고 와서는 한다는 말이 고립된 줄 몰랐다였어요.

속이 상해 술을 마셨다는 이씨는 도로 확장공사를 한다고 오십천에 H빔 수십 개로 가교를 놓더니만 그것들이 물길을 막았다며 한숨지었다. 부인 박씨는 오늘까지 산에서 샘물을 받아 마셨다며 내버려진 동네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간마을보다 형편은 낫지만 대피소의 이재민들도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오후 11시경 강원 강릉시 장현동 모산초등교 한 교실에서는 60, 70대 할머니 10여명이 잠을 못 이룬 채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지난해 150만원을 주고 산 수의를 잃었다는 권오자(74)씨는 다른 무엇보다 손자들 사진이 없어진 걸 아쉬워했다.

비바람이 거세진 창 밖을 지켜보던 이화선(62)씨는 승합차 속에서 밤을 지샐 큰아들 내외가 걱정이 된다며 며느리 결혼 패물을 챙기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비바람에 기온까지 뚝 떨어진 이날 밤, 복구작업에 비지땀을 흘리던 이재민들은 길에 내놓은 가재도구를 비닐로 덮고 집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는 등 또 닥칠지 모르는 침수 위험에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인수 민동용 sunghyun@donga.com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