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고대국가 시절, 가장 대표적인 인신매매의 형태는 전쟁에 패한 나라의 군인이나 젊은 남녀가 승전국의 노예가 되는 경우였다. 패전의 대가를 노동력으로 계산해 치른 것이다. 근대국가 들어서는 아프리카 등지의 흑인이 미국이나 유럽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로 강제 매매 형태였다. 흑인을 유괴해 이들 나라에 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노예상인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이 같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슬픈 인신매매 역사를 그리고 있다. 처음 소설로 쓰여진 후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은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의 킨타쿤테라는 흑인이 백인들의 노예로 팔려온 이후 7대에 걸친 눈물겨운 기록이 담겨 있다. 노예의 신분으로 백인들의 학대와 착취를 견뎌내고 마침내 노예해방을 맞은 후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가장 큰 목적은 노동력 확보였고 따라서 남자 노예의 몸값이 훨씬 높았다. 여성 노예들이 백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들어 인신매매는 형태가 바뀌어 젊은 여성들에 치중돼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매춘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인신매매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해당 여성의 나이도 점점 연소화하고 있다. 국제 인신매매조직의 활동 등으로 전세계에서 매년 수천명이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것이 국제노동기구(ILO)의 통계다.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우리의 젊은 딸들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필리핀 등 다른 나라 출신의 여성들도 주한미군기지 주변을 중심으로 성노예로 팔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한국의 인신매매 실태를 축소한 보고서를 미 국무부에 보냈다며 여성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이들은 축소한 일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며 다음달 미 의회에서 우리나라 인신매매 실태의 심각성을 증언하기로 했다고 한다. 인신매매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권리와 가치를 박탈하는 것이다. 여성이 한 나라의 중요한 자원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면서 일류국가를 얘기할 수는 없다. 먼 훗날 한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인신매매된 할머니의 뿌리를 찾겠다며 또 다른 킨타쿤테를 그려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