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고위 공무원인 한국 여성이 40여년 전에 헤어진 고국의 가족을 찾고 있다.
미 재무부 회계국의 고문회계관(한국의 부이사관급에 해당)으로 일하고 있는 애순 존슨(46여한국명 국애순)이 주인공.
애순씨는 5세 때인 1961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동네 시장에 어머니, 두 오빠와 신발을 사러 갔다가 굿판에 정신이 팔려 구경하다 그만 가족을 잃어버렸다.
경찰은 애순씨를 경기 의정부시의 국제보육원으로 데려갔고 3년 뒤 보육원이 문을 닫자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에스더보육원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마친 애순씨는 18세가 돼 보육원을 나가야 했지만 원장 부부의 특별 배려로 계속 보육원에 머물며 4년여간 원생들에게 타자를 가르쳤다.
20세 때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꿈꿨지만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안 남자 부모의 반대로 헤어져야만 했다.
상심한 애순씨에게 다가온 사람은 당시 서울 용산 미8군부대에서 소령으로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 릭 존슨(55).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 보육원 위문을 오던 존슨씨는 올 때마다 떠듬떠듬하는 영어로 인사를 하는 애순씨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다.
나를 찾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웠고 고아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 한국에서 버티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남편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지요.
77년 애순씨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미국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소령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이혼한 전 부인에게 보내줘야 하는 양육비만도 벅찼다.
애순씨는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통신학습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83년 의사보조사 자격증을 딴 뒤 잡은 첫 직장은 채혈사무소. 주로 노숙자들이 피를 파는 이곳에서 일하기가 무척 힘든 데다 에이즈 걱정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85년 버지니아주에 있는 육군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애순씨는 입원환자의 병원비용을 정산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회계에 재미를 붙였다.
야간에 전문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면서 2년 동안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그는 87년 같은 병원에서 회계담당 5급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됐다.
열심히 일하다보니 몇 년이 안 돼 직원 23명을 거느렸지만 조그만 동양여성의 말은 잘 먹히지 않았다.
영어발음이 나쁘다며 아예 무시하는 직원에게는 종이에다 직접 써서 명령을 했지요.
애순씨는 98년 재무부로 옮긴 뒤 특유의 성실성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남편은 같은 해 대령으로 예편했으며 지금은 전투기 제작업체인 록히드 마틴 그룹의 계열사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워싱턴 DC에서 차로 20여분 걸리는 근교에서 남편, 딸과 살고 있는 애순씨는 자신을 친딸처럼 돌봐주던 에스더보육원의 전유봉 원장이 99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가족이 그리워졌다.
솔직히 원망도 많았지만 보고 싶어요. 만약 어렵게 살고 있다면 도와주고도 싶고요.
아버지는 돌아가신 것 같고 어머니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두 오빠는 진길, 진해로 기억하고 있다.
애순씨는 가족을 찾고 싶다는 의사를 최근 서울 동대문구 헤어진 가족 찾는 모임(대표 정건화02-2246-2274)에 전해와 사연이 알려지게 됐다. 그는 다음달 4일 한국에 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