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여성들이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한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했다.
8일 남부 에스크라보스 해안에 있는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 텍사코의 생산기지를 점거한 수백명의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회사 측과 10여일간의 협상 끝에 고용확대, 주민복지 향상, 환경오염 감축 등에 합의했다.
에스크라보스 시위가 성공을 거두자 아비테예, 마카라바 등 셰브론 텍사코의 다른 4개 생산기지에서도 시위가 발생하는 등 나이지리아의 여성 파워는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AP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시위 발단에스크라보스 지역에 사는 여성 주민 150여명은 지난주 초 식기와 조리기구를 손에 들고 셰브론 텍사코 생산기지 내에 난입했다. 이들이 공장과 선착장, 헬리콥터 착륙장 등을 모두 점령하자 700여명의 노동자들은 기지 안에 갇히게 됐다.
이들이 회사 측에 요구한 것은 고용 및 지역투자 확대와 환경보호. 에스크라보스에서 석유 시추, 발굴, 운송 사업을 벌이는 셰브론 텍사코는 이곳 주민을 15명 정도만 고용해 왔을 뿐 1000여명에 이르는 인력 대부분을 미국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 데려 왔다. 이로 인해 에스크라보스는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석유가 풍부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수준은 가장 낮은 도시로 전락했다. 셰브론 텍사코는 또 석유 발굴이 근처 해안을 크게 오염시키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주민들과 갈등을 빚어 왔다.
600여명으로 늘어난 여성 시위대는 미국에서 급파된 셰브론 텍사코 경영진과의 협상을 통해 향후 5년간 매년 5명의 주민을 정기적으로 고용하는 한편 이미 고용된 비정규직 1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16일 합의했다. 셰브론 텍사코는 또 마을에 전기와 급수 시설을 마련하고 병원, 학교, 양어장, 양계장 등을 지어주기로 했다. 시위대는 18일 철수를 시작했으며 석유생산은 재개됐다.
여성 시위는 처음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는 다국적 석유기업을 상대로 한 시위가 빈번히 발생해 왔으나 여성이 시위 전선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 남성 시위대는 종종 석유기업의 주요 인사들을 납치해 일자리와 돈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에스크라보스 시위대의 대부분은 남편과 아들의 취업을 요구하는 40대 이상의 아줌마들이었다. 시위대는 14일 회사 측이 강제 진압을 시도하자 누드 시위도 불사하겠다고 외쳤다. 결혼한 여성이 맨살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기는 나이지리아에서 누드 시위가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한 셰브론 텍사코는 16일 전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시위대를 이끈 아니노 오로우는 우리는 동물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 왔다면서 여성들도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았다고 말했다.
닉 필게이트 셰브론 텍사코 이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이제 다른 경영철학을 가지게 됐다면서 앞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