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비부품을 생산하는 중소제조업체 ESE(인천 서구 가좌동)의 고형래 사장(41)은 18일 오전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떠났다. 올해 말쯤 상하이에서 가동에 들어갈 공장에 대한 세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2년째 현장 기능 근로자 10여명을 구하지 못한 채 항상 밀려드는 주문량에 쫓겨야 했다.
고 사장은 생활정보지 광고, 노동부 고용안정센터 구인등록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일손을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태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제조업체들이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면서 중국을 향해 짐을 꾸리고 있다.
송풍기 제조업체인 경진 브로워는 최근 스리랑카 출신 산업연수생 10명이 본국으로 돌아간 뒤 프레스 기술자를 구하지 못해 공장가동률이 60%선으로 떨어졌다. 추가 인력 배정을 요청했지만 두 달째 감감 무소식이다. 이 때문에 올 6월 초 인도네시아로부터 3만5000달러(당시 환율로 약 4200여만원)의 수출대금을 선불로 받고도 일손이 모자라 1만5000달러어치만 수출했다. 이 회사도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 사무실을 내고 칭다오()시 경제특구로 생산라인을 옮기기 위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인력난 때문에 남동공단 제조업체 상당수가 노인과 주부까지 현장 근로자로 투입하고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일부 업체에선 다른 업체에서 현장직 주부사원을 빼 올 경우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국산업단지 경인지역본부가 남동공단의 10인 이상 사업체 316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업체당 필수 기능인력이 10% 이상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칭다오 인근 자오난()시 해변공업단지에는 올해 6월 한국 제조업체 30여개가 입주를 마치고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자오난시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한국 제조업체들을 중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두 달 전 아예 인천시청 앞에 사무실을 열고 상담을 벌이고 있다.
전망과 대책중국 산둥()성 한국투자기업협회 윤형섭 회장(49동아제약 칭다오 현지 공장장)은 인력난 해소와 비용 감소라는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져 한국 중소제조업체들이 대거 산둥성으로 몰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현재 남동공단에 있는 3600여개의 제조업체(10인 이하 포함) 가운데 중국에 직접 또는 합자 등의 방식으로 진출하거나 이전한 업체는 70여개에 이르고 있다. 이 중 30여개는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중국에 진출했다. 앞으로 3년 안에 이런 업체가 인천지역에서만 200개가 넘을 것으로 인천상의는 전망했다.
경기 시화공단 반월공단 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2000년 이후 중국 진출업체가 전국적으로 줄잡아 20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내에도 머지않아 대만처럼 산업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우려가 높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지역 제조업체 22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0%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거나 이전할 계획이라고 응답해 이 같은 위기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나서서 제조업체를 위한 근로환경개선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천상의 민태운 경제통상팀장(42)은 실업자 대책도 중요하지만 떠나는 기업을 잡기 위해서는 생산직 근로자의 복리후생과 기업환경개선 등을 위한 전폭적인 자금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