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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낙안읍성 "마음이 포근해요"

Posted April. 18, 2002 08:49,   

보성차밭-낙안읍성 \"마음이 포근해요\"

목청좋은 수탉 홰치는 소리에 새벽잠이 깼다. 얼마만일까. 이 소리 들어본 지. 초가집 따끈한 온돌방에 깔끔한 이부자리에 누워 보름달 보고 짖어대는 누렁이 소리를 자장가삼아 편안히 깊은 잠에 빠져 본지도.

훤히 밝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아침. 비틀린 장짓문을 겨우 발끝으로 밀어 열고 문밖을 내다 봤다. 하늘에는 청명한 파란 하늘이, 땅에는 빗질 자국 곱디고운 흙마당이 있다. 문지방을 넘으려다 툇마루에서 낯선 것을 보았다. 양은 쟁반에 담긴 주전자와 컵. 자리끼였다. 어젯밤 민박집 아주머니(황정애씨68)가 놓아둔 것이려니. 여주인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에 시골 외갓집에 온듯한 푸근함이 느껴졌다.

툇마루에 걸터 앉아 집안팎을 살폈다. 수백년은 족히 됐을 거대한 은행나무가 낮은 담장 너머로 보였다. 담장 아래 널찍한 꽃밭은 그야말로 꽃대궐을 이뤘다. 자주빛 목련에 분홍빛 겹동백이 활짝 피어있고 땅바닥은 온통 낙화로 뒤덮였다. 곁에는 가는 봄이 아쉬운 듯 철쭉 치자꽃 금남화 홍도화 부용화 아스파라 수국이 덩달이 화들짝 꽃잎을 열었다.

근 백년은 족히 됨직한 이 고택. 깔끔하기가 특급호텔 못지 않았다. 거기에다 수세식 좌변기 화장실까지 갖췄다. 도시 여행자라도 불편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을 터.

읍성의 아침햇살은 비교적 늦게 비쳤다. 낙안벌판을 둘러친 높은 산 때문이다. 관광객 발길이 뜸한 새벽이야말로 읍성안을 구경하기에 최고의 시간. 성벽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며 산책을 시작했다. 초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 높지도 낮지도 않은 흙담따라 이어진 좁은 골목길, 위세 당당한 관아와 객사, 그 옆에 줄지은 노거수, 그리고 주막 마당에 드리워진 흰 광목천의 차양막. 지구 어디서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이제 절기는 곡우(지난 20일). 청명지나 곡우오고 곡우지나 입하(5월 6일)오니 곡우라 함은 봄의 마지막이요 여름의 문턱아닌가. 읍성을 나와 벌교를 거쳐 보성으로 향했다. 곡우 맞아 차잎 따기 시작한 녹차밭을 찾아서다. 이맘쯤 차밭은 연중 가장 아름답다. 연록의 여린 차잎이 피어오르고 그 잎을 따는 아낙네들이 푸른 차밭을 아름답게 수놓기 때문이다.

그 향긋한 햇차맛 보려 찾은 보성의 녹차밭. 삼나무숲에 둘러싸인 대한다업 보성다원의 차밭은 이른 아침인데도 찾는 이가 적지 않았다. 연전에 수녀와 비구니가 등장했던 모 무선통신회사 TV CF의 인기에 힘입은 덕도 있지만 차를 즐기는 애호가가 늘어난 탓이기도 하다.

온통 삼나무와 차나무로 뒤덮인 녹차밭에서 맞는 아침은 싱그럽기만 하다. 높은 산등성 너머로 늦은 아침해가 고개를 내밀면 차밭 드리운 아침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신 서늘한 삼나무 숲터널 아래 느릿한 산책로의 부드러운 흙길 위로는 짙은 숲그늘이 발빠르게 자리매김을 한다.

녹차밭 찾는 길. 쭉쭉빵빵 삼나무에 촉촉팽팽 차나무가 번갈아 반긴다. 삼나무 숲그늘, 차나무밭의 긴 골을 산책하면 몸과 마음 역시 초록으로 물들어 손목 비틀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그 상쾌함이란.

차밭에서 시작된 초록 여행. 근처 봇재 너머 보성만의 율포해변에서 즐기는 해수녹차탕 으로 이어진다. 3층 남탕(여탕은 2층)의 통유리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바다. 물나간 이른 아침이면 사각게 분주히 오가는 갯벌이, 물드는 오후에는 빈 배로 수놓인 바다를 본다. 탕안의 물은 지하 120m 암반에서 뽑아올린 바닷물 성분의 지하수. 이 물로 차잎 우려내 붉은 빛 감도는 녹차탕과 이 물만 담은 해수탕 두 개가 있다. 눈으로 입으로 즐기던 녹차의 푸르름. 이번에는 녹차 우려낸 해수탕에서 온 몸으로 즐긴다. 피부의 매끈거림으로 녹차 성분이 흡수됨을 느낄 수 있다.

순천보성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