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이 내리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소. 열은 내리게 되어 있소. 난 전진하고 싶소.
그는 기어코 세상의 끝을 보고자 했다. 전장에서 열한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조차 정체불명의 열병이 저승 사자인줄 알았던 것일까. 최후까지 향료와 알로에와 몰약()의 땅 아라비아를 정복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며칠 뒤인 기원전 323년6월10일, 바빌론에서 위대한 별 하나가 떨어졌다. 당시 33세. 12년만에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 문화가 처음으로 이종교배된 헬레니즘의 물꼬를 튼 정복자. 그래서 케사르로부터 네로, 루이14세, 나폴레옹, 카스트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권력자의 이상형이 된 인물.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B.C.356323년)이었다.
유럽에서 낙양의 지가를 높였던 이 역사소설은 알렉산더란 애칭으로 더 잘알려진 알렉산드로스 3세를 현재에 되살린 유장한 영웅 대서사시다. 페이지마다 2300여년전 중동의 광활한 모래바람이 눈 앞에 선연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피비린내가 코 끝을 스치고 승리의 함성이 귀청을 때린다. 하지만 이 책이 살점이 튀는 근육질의 무용담으로만 채워졌다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000천만부가 팔릴 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알렉산드로스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가차없던 정복자로 화석화되어있지 않고 다양한 인격을 가진 인물로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작가는 알렉산드로스가 바친 자기보다 큰 것은 바로 신의 적자()라는 자신의 운명이었다고 본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이 점을 굳게 믿었다는 점이고, 이 운명을 증명하고자 자신을 바침으로써 결국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신인()이라기보다 반신반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알렉산드로스에게도 영웅의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추위와 배고픔 같은 죽음의 고통을 인내하는 헤라클레스의 덕목만이 아니라 주색()의 도취를 즐기는 디오니소스의 덕목이 공존한다.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란 저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의 사마천()은 신산()을 같이 할 가까운 친구라도 공업()은 나누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의 친구는 그러지 아니하였다. 한 나라를 통치할 만한 역량을 가진 철의 사나이들이었지만 항상 동고동락하며 충성과 우정으로 지도자를 보필했다.
짧았으나 파란만장했던 영웅의 이야기를 다 읽은 독자는 한가지 질문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힘 만큼의 지배력을 가진 존재란 사실. 정복되지 않는 영혼의 위대함을 노래한 영국 시인 윌리엄 E 헨리의 인빅투스(Invictus1975)의 한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 나는 내 영혼의 선장(I am the master of my fate /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알렉산드로스 (전3권)
발레리오 M. 만프레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