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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심 못 읽는 정치권

Posted May. 10, 20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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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을 이끄는 3당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민심을 읽는 수준이 그 정도라면 '민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절의 아름다움에는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 채 어렵게 살아가는 수많은 서민의 고달픈 삶을 조금이라도 아는 정치인들이라면 그런 호화판 골프잔치를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곳곳에서 희망보다는 실망의 소리가 많은 오늘의 현실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 정치지도자들이라면 보통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1000만원 내기 골프니, 2천수백만원짜리 골프채를 선물로 받았다느니 하는 얘기를 그처럼 태연히 주고받을 수 없었으리라. 상품으로 내놨다는 외제 골프채와 골프화 그리고 조니워커 블루라는 고급양주 이외에도 수백 만원에 이르렀을 그날 하루 골프비용이 어떤 돈으로 계산됐는지도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하기야 오랫동안 한국 정치판의 구태에 푹 젖어온 이들의 화려한 경력을 보면,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비판의 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우리 식으로 가겠다는 DJ정권의 행태로 보면 이들 여권 수뇌부가 '민맹'이 되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호남에서까지도 패배한 426 재보선은 그들이 골프판을 벌이기 불과 열흘 전의 일이다. '헌정사에 남을 편법'의 집단기권극으로 국민의 냉소를 자아내게 한 총리해임안 부결처리 파동이 있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이런 때에 호화 골프판을 벌인 정치인들에게 민심 헤아리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연목구어()다.

여권은 민심을 헤아리거나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기보다는 의회주의를 짓밟는 반칙 편법 불법의 기법을 나날이 버전 업하고 있다. 새로운 반칙기술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법안의 날치기처리는 고전에 속한다. 지난 해 11월 박순용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처리 때는 자기 당 소속 국회의장의 본회의장 입장을 물리력으로 막아 소추안을 무산시키는 새 기법을 선보였다. 의원 꿔주기도 기상천외의 비법이지만 '3당연합'이 보여 준 집단기권극은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것보다 몇 수 위라 할 만하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기법이 나올지 궁금하다.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 야당을 쓰러뜨릴 때마다 여권지도부는 통쾌해했겠지만 그러는 사이 민심은 그만큼 멀어져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권은 왜 이런 욕먹는 신기법을 개발하느라 머리를 굴릴까. 야당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겨야겠다는, 승리지상주의에 대한 집념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은 쓴소리를 했다. ''여당도 표결에서 질 수 있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지금 여권은 질 수 있다는 여유를 갖기는커녕 지고도 진 줄을 모른다. 당장 눈앞의 작은 것에는 이겼어도 큰 것에는 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진 게 아니라고 우겨대는 외고집이다. 426 재보선 참패에 대해서도 청와대고위관계자는 겸허히 수용하겠다고는 하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민심의 심판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총리해임안을 해괴한 방법으로 무산시키고도 ''법적으로는 문제없다''고 큰소리 친다.

매사 이기려고만 하니 여유가 없다. 정치판이 답답하고 팍팍하다.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을 펴고 있는 한국수양부모협회 박영숙 회장은 말한다. ''질 줄 모르는 사람은 계속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은 결국 아이들을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행복하게 하자는 운동이다.'' 지는 연습을 많이 한 아이들이 진정으로 이기는 아이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지는 법 배우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모양이다. 이 운동의 맨 앞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서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또 한 사람의 질 줄 모르는 정치인, 이회창 한나라당총재가 서면 국민들 보기에 모양이 그럴 듯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이 모두 이기고 나아가 나라 전체가 이기는 길을 열어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어경택 euh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