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현대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에 대한 북한의 조문사절단 파견이 남북관계에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물론 북한은 단순한 조문 이상의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그러나 조문사절단은 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연기되고, 현대와 북측의 금강산관광사업 대가()협상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서울에 왔다. 더욱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간에는 대북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측의 조문사절단 파견은 미국이 뭐라고 하든 북한은 여전히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버리지 않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조문사절이 당장 남북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북측 사절단은 서울 체류 중 남측 당국자들과의 접촉을 피했으며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어떤 언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짧은 서울 체류를 되짚어 본다.
당국간 접촉 기피
24일 신라호텔에서 만난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면식이 있는 정부 관계자들간에 인사 정도는 있었지만 (양측 당국간에)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고 말했다. 송부위원장도 호텔을 떠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오직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서거를 애도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뜻을 전하러 온 것이라고만 말했다. 북측의 이 같은 태도는 조문단 파견 의사를 판문점에 설치된 당국간 채널이 아니라 적십자 채널을 통해 전해왔다는 점에서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민간사업의 경우 그동안 적십자 연락사무소를 통해왔다는 점에서 북측이 조문의 성격에 관한 한 미리 선을 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북 라인 제대로 가동되나
송부위원장이 24일 낮 1시8분경부터 약 2시간반 신라호텔에 머무는 동안 남측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정부의 대북 라인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를 비롯한 대북 라인은 이날 호텔에 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이번 행사에 총동원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북측 고위인사의 방문이고 신변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공항과 신라호텔에서 북측 조문단에 매달린 듯한 느낌을 준 것은 역설적으로 이 라인이 남북 당국간 통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송부위원장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장관급회담 등 남측의 대화재개 의사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다.
조화 전달과 송이 전달의 유사성
송부위원장의 이번 방문은 지난해 9월 송이 전달을 위해 서울에 온 뒤 바로 돌아간 북한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박재경(대장)선전부국장의 방문과 흡사하다. 두 사람의 체류시간이 6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라는 점도 그렇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뜻만을 전달했다는 점도 그렇다. 조성태()국방장관은 당시 신라호텔에서 박재경대장과 10여분간 환담했고, 이번에도 정부측은 송부위원장과 짧은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남북간에 앞으로 이런 식의 접촉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낳게 하고 있다. 다소 낙관적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남과 북 어느 쪽이든 애경사()가 있을 경우 사절단을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