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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돈줄’ 파산 블랙먼데이 공포

‘실리콘밸리 돈줄’ 파산 블랙먼데이 공포

Posted March. 13, 2023 07:41,   

Updated March. 13, 202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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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크 기업들의 주거래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사태 48시간 만에 폐쇄됐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보유한 국채 급락 등의 사태에 대응하려다가 자산 277조 원 규모의 은행이 순식간에 붕괴한 것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는 줄도산 공포 속에 정부에 긴급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오전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급 불능 사태에 빠진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지정했다. 1983년 설립된 SVB는 40년 동안 미 서부지역 벤처캐피털(VC) 및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은행이다. 테크 기업 예금을 유치하고, 초기 스타트업에 대출을 해주며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인도, 중국 등 테크 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발 금리 인상으로 SVB가 보유한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예금 이자 부담이 커지자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한 것이 시장의 공포를 불러왔다. 8일 오후 SVB의 모회사 SVB파이낸셜그룹이 22억5000만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신주 조달 계획 등을 발표하자 ‘뱅크런’이 시작됐다. 고금리로 자금 경색에 시달리던 미 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예금 인출에 나선 것이다.

9일 하루 동안 420억 달러(약 56조 원)가 인출됐고 주가는 60% 이상 급락했다. 결국 48시간 만인 10일 오전 은행 폐쇄로 이어졌다. “2008년 워싱턴뮤추얼 은행 붕괴 이후 미 역사상 두 번째 최대 규모 은행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당장 13일부터 줄도산이 벌어질 수 있다며 서양에서 불길하게 여기는 ‘13일의 금요일’을 빗대 ‘13일의 월요일’을 우려하고 있다. 벤처 투자가 데이비드 색스는 트위터에 “월요일 전에 ‘모든 예금이 안전하다’고 발표하지 않으면 위기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태가 팬데믹 거품과 고금리의 영향임을 감안하면 부동산 대출은행 등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SVB의 고객이 테크 업계에 한정돼 2008년 리먼브러더스 부도로 금융시스템 전반이 붕괴하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것처럼 ‘제2의 리먼 모먼트’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리 금융당국도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12일 정례 간담회를 열고 SVB 사태에 대해 집중 점검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SVB의 유동성 위기가 은행 폐쇄로 확산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SVB 주식 약 10만 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식 가치가 304억 원가량이지만 9일 주가 폭락으로 반 토막이 났다.


김현수 kimhs@donga.com · 박민우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