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3500억 달러(약 486조 원)의 대미(對美) 투자펀드 등 한미 관세 합의 후속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유력한 다음 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로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나 한미 무역합의 후속 협의를 갖고 14일 귀국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협상 성과에 대한 질문에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한미 산업장관 회담 하루 전인 11일 “한국은 관세를 내든지, 아니면 합의를 받아들이든지 양자택일(black or white)”이라며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세를 25%로 다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한미 간 간극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서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최적 상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관세 협상의 특징”이라며 “관세 협상은 영점을 맞추는 과정이고, 완료 시점은 우리의 이익이 관철되는 지점이다. 현재 변수가 많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7월 30일 미국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는 내용의 관세 합의를 타결했다. 하지만 대미 투자펀드를 두고 미국이 한국에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양해각서(MOU) 서명을 요구하면서 한미 후속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일은 미국이 투자처를 지정하면 일본이 45일 이내 현금을 투자하고, 투자금이 회수된 뒤엔 미국이 투자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내용의 MOU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미국의 관세 복원 위협에도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로 대미 투자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이 커지고 국내 여론이 악화된 만큼 미국의 요구를 섣불리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마냥 협상을 미룰 수는 없지만 여러 변수들이 있는 상황”이라며 “미중 관세협상과 APEC 정상회의 일정 등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10월 31일)와 미국의 중국 관세 유예 시한(11월 10일) 등을 고려해 한미 관세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앞서 미 백악관 관계자는 CNN에 APEC 정상회의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준비되고 있다며 “방한 초점은 경제협력으로 무역과 안보, 민간 원자력 협력도 (의제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