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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작별

Posted February. 28, 2025 08:23   

Updated February. 28, 2025 08:23


간결한 위로 한마디, ‘어딜 가든 다 그대 음악을 알아주리니 걱정 마시라’. 칠현금 연주의 명인과 작별하는 자리에서 시인이 건넬 수 있는 말은 이뿐이었다. 삭풍이 불고 눈이 날리는 폐색의 겨울, 해 질 녘이어서인지 자욱한 황사 탓인지 구름도 태양도 윤기를 잃은 채 어슴푸레하다.

동정란(董庭蘭)이란 음악가와 작별하는 자리가 이리 스산하다. 한때는 재상의 권력을 뒷배로 명사들과 교유도 하고 제법 기세도 떨쳤다는데 적빈(赤貧)의 신세로 떠돌다가 시인과 조우한 것이다. ‘동대(董大)’라 부른 건 동씨 집안의 맏이라는 뜻. 가난하기는 시인도 마찬가지여서 작별 인사로 술 한잔도 나눌 수 없었던지 ‘대장부의 가난이 무어 그리 대수랴만, 오늘 그댈 만났는데 술값이 없구나’(‘동대와 작별하며’ 제2수)라 토로했다. 짐짓 가난에 초연한 듯 호쾌한 모습을 보였지만 초라한 작별의 자리가 못내 안쓰럽다.

젊은 시절 곤고(困苦)한 삶을 살았던 시인은 변방을 들락이며 경륜을 쌓았고, 동대와의 이 작별이 있은 지 2년 후 맹장 가서한(哥舒翰)의 막료로 들어갔다. 안사의 난 시기에 숙종으로부터 군사적 지략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고, 선비 출신이면서 군공(軍功)으로 봉작을 받는 특이한 이력까지 남겼다.

천리 아득한 누런 구름, 어슴푸레 빛을 잃은 해.

북풍은 기러기를 몰아치고 눈발은 어지러이 흩날린다.

그대 가는 길에 지기 없을까 걱정은 마시라.

천하에 그 누군들 그댈 모르겠는가.

(千里黃雲白日, 北風吹雁雪紛紛. 莫愁前路無知己, 天下誰人不識君.)

―‘동대와 작별하며(별동대·別董大)’ 제1수·고적(高適·약 704∼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