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장 완장을 찬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팀의 리더가 돼 즐겁다.”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FC서울의 외국인 선수 린가드(33)는 지난해 6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기성용(36) 대신 임시 주장을 맡은 뒤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서울에 입단한 그는 이름값만 놓고 보면 K리그를 거쳐 간 역대 모든 외국인 선수를 통틀어 최고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서 뛴 그는 EPL 통산 182경기에 출전해 29골을 넣었다.
지난 시즌 임시 주장으로 17경기(7승 5무 5패)를 소화한 린가드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팀이 이겼을 땐 라커룸에서 신나게 춤을 췄고, 졌을 땐 “고개 숙이지 말자” “지나간 경기는 잊자”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김기동 서울 감독(53)은 동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린가드를 2025시즌 주장으로 15일 임명했다. 린가드는 “올해는 팀이 (지난 시즌보다) 목표를 높게 잡아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린가드는 휴가를 반납하고 개인 훈련을 하는 성실한 태도와 후배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서울 관계자는 “EPL을 보면서 성장한 어린 선수들이 솔선수범하는 린가드를 따라 훈련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전했다. 기성용은 지난해 10월 부상에서 복귀한 뒤 “린가드가 (EPL에서 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걸 보면서 훌륭한 선수라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린가드는 틈날 때마다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고, 몸 관리를 위한 식단을 알려준다고 한다. 서울 관계자는 “린가드에게 ‘후배 사랑’의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린가드가 ‘맨유에 있을 때 선배들이 나를 잘 챙겨줘서 적응할 수 있었다. 나도 후배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은 ‘린가드 효과’를 톡톡히 봤다. 26경기에서 6골을 넣은 린가드의 활약 속에 서울은 K리그1 파이널A에 진입해 4위로 시즌을 마쳤다. 서울은 또 유료 관중 집계가 시작된 2018년 이후 최초로 한 시즌 안방경기 총 관중 50만 명을 돌파(총 50만1091명)했다.
외국인 선수가 주장으로 팀을 이끄는 것은 더는 특별하지 않다. 포항 완델손(36)과 대구 세징야(36·이상 브라질)도 내달 15일 개막하는 K리그1에서 주장 완장을 찬다. 3명의 외국인 캡틴이 나온 건 올해가 처음이다.
수비수 완델손은 2년 연속 포항 주장을 맡았다. 포항에서 5시즌을 뛴 완델손은 지난 시즌 동료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완델손이 오베르단(30·브라질)에게 “안녕하세요” “된장찌개” 등 한국말을 알려주는 영상도 화제가 됐다. 완델손은 국제운전면허증이 없는 조르지(26·브라질)를 위해 직접 운전을 해 훈련장 출퇴근을 함께 하기도 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완델손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전 경기(38경기)에 출전했다. 포항 관계자는 “유쾌한 성격의 완델손은 한국 선수들과도 끈끈하게 지낸다. 전지훈련 때 한국 선수들이 완델손에게 근력 운동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걸 보고 주장을 잘 뽑았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구의 왕’으로 불리는 세징야는 2022, 2023년 이후 세 번째 주장을 맡았다. 2016년부터 대구에서만 뛰고 있는 ‘원 클럽맨’ 세징야는 K리그1 정규리그 통산 226경기에 출전해 88골을 기록 중인 공격수다. 세징야는 대구 팬들이 ‘안방 경기장 앞에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K리그1에서 11위에 그쳐 강등 위기에 몰렸던 대구는 충남아산(2부 리그)과의 승강 플레이오프(PO) 1, 2차전에서 세 골을 넣은 세징야 덕분에 합계 6-5로 앞서 1부 리그에 살아남았다. 대구 구단 관계자는 “팀의 상징적 존재인 세징야의 풍부한 경험과 영향력을 고려해 다시 주장을 맡겼다”고 밝혔다.
정윤철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