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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해야 한다

Posted February. 20, 2023 07:32   

Updated February. 20, 20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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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 한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生)’ 중에서

책 속에서 열네 살 주인공 모모는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런 모모에게 생(生)은 매번 아주 모질게 “그렇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신을 거두어준 로자 아줌마가 죽어가고…. 모모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마치 사랑 없이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모모가 가장 존경하는 하밀 할아버지마저 “그렇다”고 답했으니,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모모는 끝끝내 이 명제를 부정한다. 하밀 할아버지가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모는 노망이 든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하셨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러고는 그렇게 말씀하셨던 게 맞다며, 자신마저 속인다.

내가 지켜봐 온 생 역시 감당해야 하는 것일 때가 많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기에, 결국에는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라고, 사랑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생에 대한 처절한 선전포고다. 생에 지지 않으려는 악착같은 투지다. 하지만 모모의 삶이나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세상만 보아도 생은 너무 가혹해서 사랑도 뭣도 없이 그저 살아내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는 벅찬 생의 한가운데서 주문을 외듯 중얼거려야 하는 문장이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 그래야 하는 거니까.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거기에 사랑이, 그 비슷한 무언가라도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위해. 우리를 떠나간 존재들은 사랑 없이 살 수 없기에 그 의미를 충분히 완수하고 떠난 것이며, 남겨진 우리는 아직 사랑해야 하기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기 위해.

그러니 세상이 아무리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다고 해도,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