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장을 넘기면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약자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있고, 다음 장을 넘기면 어쩐지 스산해 보이는 사진이 나온다. 건설 중인 콘크리트 장벽 위로 새들이 날아가는 사진이다.
사진이 스산해 보이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에세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西岸·서안) 둘레에 거대한 분리장벽을 세웠다. 평화의 사도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도 분리장벽을 피하지 못했다. 장벽은 때때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논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름으로써 그들이 먼 길을 돌아 검문소를 통과한 다음에야 자기 논밭에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러니는 그 장벽을 건설한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이라는 것이다. 동족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살 길이 없으니 동원된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길이 700여 km, 높이 9m의 콘크리트 장벽은 웨스트뱅크를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었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닮은 수용소. 다른 점이 있다면 비교가 안 되게 크고 영속적이라는 거다. 수난의 역사는 그들에게 뭘 가르친 걸까.
건설 중인 아파르트헤이트 장벽을 카메라에 담던 사진기자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들이 장벽 위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그는 카메라를 들어 그 모습을 찍었다. “새들은 마음대로 장벽 앞뒤를 넘나드는데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구나.” 그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장벽 위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팔레스타인인들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일깨운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사진으로 남긴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렇다고 불의를 외면하고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적인 사진기자 정은진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세계의 약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상처와 눈물을 사진으로 남기는 소박한 이유다. 또한 자신의 에세이를 “세상의 모든 약자에게” 바친다고 말한 이유다. 이보다 더 따뜻한 타자의 사진미학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