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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휘감은 피아노 선율... 클래식 폭풍우, 더위 날리다

알프스 휘감은 피아노 선율... 클래식 폭풍우, 더위 날리다

Posted August. 07, 2018 07:43   

Updated August. 07, 2018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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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오전 스위스 발레주의 산간 마을 베르비에. 올해 25주년을 맞이한 베르비에 페스티벌 사무국에 비상이 걸렸다. 당일 저녁 협연 예정인 피아니스트 라두 루프의 건강이 악화돼 공연을 취소한 것. 주최 측은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에게 급히 SOS를 보냈다. 언드라시는 가보르 타카치너지가 지휘한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VFO)와 단 한 번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해발 1600m의 알프스 고지대에 자리한 베르비에도 지구 온난화의 습격을 비켜가지 못해 한낮엔 섭씨 30도를 넘긴다. 에어컨 시설이 없는 음악텐트 ‘살 드 콩뱅’은 연주자 교체와 상관없이 1700석을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메운 청중으로 후텁지근했다. 언드라시가 단 몇 시간 만에 준비한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언드라시 경은 언제나 그렇듯 구도자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등장했다. 1악장 도입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동기’와 매우 흡사한 3연음을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은 이미 청중의 눈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강력한 베토벤 대신에 사색하는 베토벤을 선택한 그의 음악은 이미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앨버트로스 새처럼 날아올랐다. 카덴차 후반부에서 행여 오케스트라가 먼저 나올까 왼손을 들어 제어하는 모습은 거장도 긴장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3악장이 폭풍우처럼 지나가자 청중은 모두 기립했다. 언드라시가 앙코르로 슈베르트의 ‘헝가리 멜로디’를 눈을 지그시 감고 연주할 때 객석은 감동으로 적막에 휩싸였다.

 스웨덴의 공연 기획자 마르틴 엥스트룀은 1994년 여름 스키장에 음악축제를 시작했다. 역발상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25년 후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세계 정상 음악가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축제 기간 중 인구 3000명을 겨우 넘는 베르비에는 관람객과 연주자가 뒤섞여 수만 명으로 북적인다. 뒤풀이 장소인 ‘몽 포트’에 가면 언제든 솔리스트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을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콘서트와 아카데미를 병행하는 축제 시스템은 대관령 국제음악제가 벤치마킹해 국내 여름축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축제에서 우리 연주자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7월 29일 예브게니 키신이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VFO는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지휘한 글라주노프 발레음악 ‘4계’에서 수준급의 음악을 선보였다. 한국계 단원이 무려 15명이 포진한 올해 VFO는 3명의 심사위원이 세계를 돌며 오디션을 거쳤다. 이들 젊은이는 발레리 게르기예프, 자난드레아 노세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조련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5일 저녁에 열린 25주년 기념 갈라콘서트에서 키신, 플레트네프, 언드라시, 유자왕 등 8명의 쟁쟁한 피아니스트와 함께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을 넉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며 세계 정상급에 올랐음을 증명했다. 작년 베르비에에서 열린 방동 프라이즈 콩쿠르에서 수상한 피아니스트 김도현(23)도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영국의 신고전주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비평론’에서 ‘알프스 위에 알프스가 솟아오른다(Alps on alps arise)’고 말했다. 2018년 여름 알프스는 음악으로 더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베르비에(스위스)=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클라라하우스 대표


전승훈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