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밝힌 지 하루 만인 23일 환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했다. 미국의 근로자들에게 좋은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무역 중심의 세계질서가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을 둔 보호무역, 양자 무역협정 시대로 가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미국의 전통적 경제·정치 동맹도 재협상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당장 멕시코는 페소화 가치가 20%나 떨어지고 증시 시가총액이 6%나 빠졌다. NAFTA만 믿고 멕시코에 공장을 지은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과 싱가포르 등 12개국이 참여한 TPP에 한국은 가입하지 않아 직접적 영향은 없지만 트럼프 행보가 워낙 거세 한미FTA까지 재협상하자고 나설 공산이 크다. 아태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TPP에 이어 한미 경제동맹 역할을 해온 한미FTA가 흔들려 지정학적 변동이 생길 수 있으므로 다각도의 대비가 시급해졌다.
트럼프발 세계무역전쟁 서막에도 정작 미국에 기대만큼 실익이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기술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줄어드는 미국 내 제조업 지원을 위해 시대착오적 보호주의를 들고 나온 것부터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을 가져올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은 물론 글로벌 교역과 경제의 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패권을 넘보는 중국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한국은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자국 산업 및 일자리 보호를 주장하면서 자동차 의약품 등에서 한미FTA 추가협상을 벌인 전력이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을 마련해 한미FTA가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전통 제조업 부흥에 집중할 때 우리 산업구조 고도화 촉진의 기회로 삼으면 되레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TPP를 주도하던 일본이 타격을 받으면 미국시장에서 상품이 겹치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도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수출 길을 밝힐 수 있는 수단은 기업의 경쟁력 향상 밖에 없다. 세계시장의 변화를 읽고 과감히 움직이는 기업가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