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는 문서 작성이라면 질색하는 타입이었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연설문이다. 이언 커쇼가 쓴 히틀러 평전에는 히틀러는 직접 원고를 썼는데 한번 썼다 하면 며칠을 밤늦게까지 방에 틀어박혀서 몰두했다. 3명의 비서가 히틀러가 불러주는 내용을 바로 타자기로 쳤고 히틀러는 그 내용을 다시 꼼꼼히 손질했다.고 나와 있다. 연설 내용은 진부하지는 않았지만 현학적이지도 않았고 청중에게 쉽게 전달됐다. 히틀러는 강력한 충격을 줄만한 제스처를 찾기 위해 사전에 사진의 제스처를 사진으로 찍어 연구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훌륭한 연설가가 아니었다. 말 주변이 없어서 연설할 때는 미리 쓰여진 원고를 자꾸 쳐다보면서 읽는 책 읽기 연설을 했다. 연설의 내용도 진부했다. 박진감 넘치는 히틀러의 연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외모에도 자신이 없어 사진 찍는 쪽보다 초상을 그리는 쪽을 더 좋아했다. 사진도 대개 조작된 것이다. 그의 사진이나 초상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돼 보이는 이유다. 독재라고 해도 독일의 서방적 전통과 소련의 동방적 전통에는 차이가 크다.
북한 김정은은 15일 김일성 100주년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 군중 연설을 했다. 김정은의 역할 모델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다. 김정일이 했던 공개 연설은 1992년 인민군 열병식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국 장병들에게 영광있으라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은둔형 예술가 기질의 김정일은 연설을 잘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하지 않는다는 주의였는지 모른다. 반면에 김일성은 광복 직후 평양에서의 귀국 연설을 시작으로 해방 정국에서 수시로 연설을 했고 말년까지도 신년사를 직접 낭독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김일성의 목소리를 닮은 중저음을 흉내 내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만 비슷했지 김일성의 위풍을 따라가지 못했다. 스탈린처럼 원고에 의존하는 책 읽기 연설을 했다. 그마저도 자신감이 부족했는지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계속 흔들흔들 움직였다. 북한 바깥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연설 내용도 판에 박힌 것이었고 20분 가까이 이어져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장거리 미사일과 흰색 망토를 걸친 백마부대 등 배경과 어우러져 흘러간 날의 쇼를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