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베트남전 등에서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코드 네임으로 사용한 고엽제는 미국 내에서도 오랜 법정투쟁의 대상이 돼 왔다. 인체에 피해가 없다는 상부의 명령을 믿고 베트남 정글에서 고엽제를 살포한 미군들은 귀향한 뒤 두통, 현기증, 가슴앓이 등의 질환은 물론이고 폐암, 전립샘암, 심장질환 등에 시달렸다. 부인들 역시 비슷한 질환에 시달리거나 유산 또는 기형아 출산을 하는 일이 빈발하면서 참전용사들은 이 악마의 화학물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가족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78년. 베트남 재향군인 에이전트 오렌지 희생자회는 찰스 하르츠 병장을 대표소송인으로 내세워 다우케미컬 몬산토 등 7개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40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냈다. 원고만 1000만 명이나 되는 대형 소송이었다. 6년을 끈 이 소송은 1984년 제조업체와 변호인단이 고엽제 피해자와 가족에게 1억80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주기로 하고 합의를 하는 바람에 법정에서 심판이 내려지지 못했다.
변호인단의 이 같은 결정에 격분한 참전군인과 가족들은 합의는 무효라며 전국 5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청회를 열고 항소했지만 연방항소법원의 잭 와인스틴 판사는 합의에 이른 과정은 정당하고 공정했다며 원고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참전군인과 사망에 이른 장병 가족에게 상해의 정도에 따라 1만20003700달러가 차등 지급됐다.
2004년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에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미군의 무차별한 고엽제 살포로 피해를 보았다며 에이전트 오렌지를 제조한 14개 회사에 제조물 책임을 물은 것. 하지만 2005년 1심 기각, 2007년 항소심 기각을 거쳐 2009년 대법원에서 각하되면서 싱겁게 끝났다. 이는 미국의 엄격한 국제법 적용에 따른 것이었다.
외국인이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경우는 미국이 국제법이나 국제조약을 위반해 불법행위를 한 경우에 한정된다. 미국 법원은 베트남전쟁 중 제초작업을 위해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한 것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베트남전 참전 한국 군인들이 미국에 낸 소송도 이런 원칙에 따라 모두 기각됐다.
미국은 법률적 소송과는 별도로 고엽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위로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 보훈처는 1968년 4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 사이에 한국의 비무장지대에 근무했던 사람 중 고엽제 관련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하고 있다. 당시 군인들 중 전립샘암, 파킨슨병, 골수종, 호지킨병 등 보훈처가 특정한 14개 병에 시달리면 별도 증빙서류를 낼 필요가 없다. 이번에 1978년 경북 칠곡군 왜관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서 에이전트 오렌지를 묻었다고 증언한 전 미군 장병들은 근무 기간과 근무 장소가 보상범위 밖에 있어 즉각적인 보상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