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타지마할이나 페루 마추 피추 상공에는 역사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비행금지구역(No-fly zone)이 설정돼 있다. 미국 워싱턴 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건물 상공,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과 관청가 화이트홀 상공도 국가 안보를 위해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정한 반경으로 그어진 수도권 비행금지구역이 있다. 그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국민 시위대를 전투기로 폭격하는 가다피의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다.
냉전 종식이후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최초의 비행금지구역은 19912003년 이라크영공에 만들어졌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북부 쿠르드족에 전투기로 폭격을 가하자 미국 영국 프랑스 터키가 나서 이라크 북부를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어 놓았다. 그러나 이 조치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 없이 이뤄지는 바람에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안보리의 명시적 결의에 따른 최초의 비행금지구역은 1993 1995년 세르비아인의 코소보인 학살을 막기 위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공에 설정됐다.
리비아내 유전개발과 건설 프로젝트 등의 이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당초 반대 입장에서 기권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아랍연맹의 압박 때문이다. 두 나라는 국가이익만 따지다가 국제사회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은 비무장지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한쪽 당사자가 금지구역을 침범하면 다른 쪽 당사자의 군사적 보복에 직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한 문제가 없다. 본격적인 군사개입이 어려울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유엔이 지정한 군대는 리비아 영공을 날아다니는 공군기를 격추할 권리를 갖는다. 전투기를 동원한 감시활동에 들어가기 앞서 사전정지작업으로 유엔측 전투기를 공격할 수 있는 리비아측 방공망을 부수기 위한 작전이 개시된다. 미 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리비아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가세할 준비가 돼 있다. 반군의 최후 보루인 뱅가지마저 함락되고 나면 무자비한 보복이 시작돼 가다피의 공언대로 피의 강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리비아 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꺼져가는 리비아의 민주화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