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정치자금법 개정안 기습 처리와 관련해 가장 많은 것을 잃은 곳은 민주당이라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대안정당,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높은 도덕성을 발판삼아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데도 되레 여당에 비해 훨씬 희미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원칙도, 명분도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정자법 기습처리 후 열린 첫 지도부 회의였던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한마디 말도 내놓지 않았다. 그 대신 전국을 다녀보니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얘기가 많다며 정부, 여당을 비판했다.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도 정자법 기습처리 문제에는 침묵했다.
같은 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여론, 법리상 문제점 등을 철저히 재검토해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안상수 대표), 의원 면소()를 위한 법안은 광복 이후 전례가 없는 입법권 남용이다(홍준표 최고위원)라는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과 대비된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되레 개인의 소액 후원금 활성화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고 헌재가 이미 위헌이라고 판단한 내용을 손질하는 것이며 개정이 통과되더라도 청목회 입법 로비 사건으로 기소된 의원들은 면소되지 않는다며 개정안 처리를 옹호했다.
또 4일 행안위 정치자금제도개선 소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본 결과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훨씬 집요했다. 지난해 11월 말 단체기업 후원의 허용, 기부내용 공개 시 의원 면책 등의 내용을 담은 정자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비판을 받은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제가 제출한 건 폐기되는 게 아니라 정치개혁특위에 넘기는 거지요라며 두 차례나 확인을 구했다.
지난해 11월 26일 연평도 포격 사태 와중에 열린 국회 운영위에서 국회의원 세비()를 5.1% 기습 인상할 때도 시기의 부적절성 등을 내세워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은 없었다. 오히려 민주당 박기춘 원내 수석부대표는 당시 의원 세비는 차관보 수준보다 더 낮다며 인상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 중진의원은 청와대가 국민여론,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거부권 행사 검토 의사를 시사한 것을 거론하며 대통령이 제1야당보다 (도덕성에서) 낫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걱정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민주당은 그간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안마다 보여주는 태도는 자신들이 부르짖는 개혁 민주주의 진보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조수진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