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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포폰

Posted November. 04, 201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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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포탄을 멀리 날려 보내는 무기()로서의 대포가 있고, 허풍에 빗대어 표현하는 대포도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할 때 흔히 대포를 놓는다고 말한다. 소리는 크지만 실속은 없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휴대전화가 일반화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수사기관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대포폰이란 신조어는 대포의 두 번째 의미에서 유래했다.

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본인 몰래 도용해서 개설해 놓은 휴대전화가 대포폰이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 전화 통화한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주로 범죄자들이 사용한다. 경매 사이트에 물건을 헐값으로 올려놓고 구매 희망자를 유인한 뒤 대포폰으로 통화하면서 역시 명의를 도용해 만든 대포통장에 입금시킨 뒤 대포차를 타고 달아난 사기범도 있었다. 유괴범이나 스팸 문자를 이용한 사기는 대포폰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뭔가 뒤가 구린 사람들이 대포폰을 쓰기도 한다. 대포폰 사기가 늘어나자 각종 사기 피해를 신고하는 인터넷 사이트(www.thecheat.co.kr)도 등장했다.

검찰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포폰이 등장했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의 행정관이 대포폰을 공기업 임원 명의로 지원관실 직원에게 만들어줬으며 이 직원은 사찰 관련 기록이 들어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하기 위해 컴퓨터 전문가와 접촉하는 데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불법사찰 행위의 전모를 숨기기 위해 대포폰이란 불법 장비를 동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목적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가 대포폰을 만들어준 것은 청와대와 지원관실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1일 국회에 출석해 검찰이 대포폰 관련 증거 기록을 불법사찰 사건 기소 직후 법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 관계자는 자료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 장관이 대포폰 관련 내용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대포폰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