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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만주 사변]교과서를 비교한다기타오카 신이치 교수 인터뷰

[제5장 만주 사변]교과서를 비교한다기타오카 신이치 교수 인터뷰

Posted December. 24, 2007 15:12   

[역사는 살아있다/만주 사변]교과서를 비교한다

만주 사변과 만주국에 대해, 동아시아의 젊은 세대는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 일본, 중국, 한국, 대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중학생용 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기술을 비교하고, 왜 그렇게 기술되어 있는지를 검토한다.

일본 - 중국으로의 침략이라고 표현

일본의 중학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새로운 사회 역사(도쿄서적())는 만주 사변과 만주국 건국에 대해 1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만주국 건국 기념일을 축하하는 사람들. 중앙의 안경을 쓴 인물이 푸의(). 일본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도쿄서적()의 중학 교과서에 게재되어 있다.

만주에서 일본 권익을 확보하기 위해, 만주를 중국에서 분리할 것을 주장한 현지 군부(관동군)는 1931년 9월 18일, 펑톈() 교외의 류타오후(条)에서 남만주 철도를 폭파하고, 이를 계기로 군사 행동을 개시했습니다(만주 사변). 만주(満)의 주요부를 점령한 관동군은 1932년 3월, 청조 마지막 황제인 푸의()를 원수로 추대하여 만주국을 건국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이후, 국제연맹이 만주국 건국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해 일본이 연맹을 탈퇴한 사실이나, 파시즘 국가인 독일 등과 결부된 점, 수상 습격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나 군부의 정치적 발언력이 점차 강화된 것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경과를 정리한 항에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1980년대에 불거진 교과서 문제에서는 일본의 전쟁 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침략이라고 표현할 지가 쟁점이 되었지만, 도쿄서적의 와타나베 노리오(辺) 사회편집 부장은 현재는 타국의 영토나 주권을 침해한 행위를침략이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열강 제국에 의한 식민지 분할에 대해서도 구미 열강의 침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만주 사변에 이르는 국내외의 정세에 대해서는 4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세계 공황과 블록경제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파시즘 대두를 설명한 다음, 일본에서도 공황이 일어나고 정당 정치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었다는 것이 적혀 있다.

만주에서의 항일운동이나 일본에서 건너간 개척단 등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기술하는 추세인 현행 판에서는 소개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푸의()가 일본 군인에게 둘러 싸여 있는 사진을 실어 괴뢰 국가의 실태를 시각적으로 전하고 있다.

(요시자와 다쓰히코 沢)

중국 - 9•18사변, 설명에 1 페이지 반

중국에서 가장 폭 넓게 사용되고 있는 인민교육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 중국 역사 8년급에서 만주 사변은, 중화 민족의 항일 전쟁이라는 단원 첫 머리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부터 중국 인민에 의한 항일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학습 지도 요령에 해당하는 역사 과정 표준을 충실히 따른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주 사변은 9•18 사변으로 불리고 있다. 과정 표준에서는 9•18 사변(류타오후(条)사건)의 역사적 사실을 약술하고 있으며, 9•18 사변 이후, 중국에서 국부적으로 항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자라는 것이 지침이다.

교과서에서는 잊어서는 안 되는 9•18 사변이라는 제목으로 1 페이지 반 정도를 할애하고 있으며 첫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일본 침략군은 계획적으로 류타오후(条) 사건을 일으켰으면서도, 중국군이 철도를 파괴했다는 트집을 잡아, 이것을 구실로 중국 동북 군이 주둔하던 베이다잉()로 진격하여 선양()성을 포격했다. 9•18 사변이 발발했던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가 만주 사변에 이르는 국제 정세를 자세하게 설명한 것에 비해, 중국의 교과서는 그러한 기술은 일체 없다.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1) 일본 측 모략에 대한 자세한 설명 (2) 장제스()가 동북 군에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관계로 동북부가 점령된 점, 이 두 가지이다.

또한, 만주국은 중국에서는 위만주국(偽満国)이라 불리며, 일본에 의한 만주국 건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동북부가 함락된 후, 1932년에 일본은 이미 퇴위하였던 청조 마지막 황제 푸의()를 옹립하여, 창춘()에서 위만주국(偽満国) 괴뢰 정권을 수립하여 동북부를 중국에서 분열시키려 했다. 일본 침략자의 말발굽 아래에서, 동북부의 3천만 동포는 굴욕적인 망국 노예 생활을 보냈던 것이었다

(사토 가즈오 )

한국 - 세계사에서 3줄 만 기술

한국에서 자국사를 다루는 국사는 국정 교과서이다. 만주 사변이나 만주국에 관해서는 국사에서는 다루지 않고, 세계사를 가르치는 사회 2에서 설명하고 있다.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금성출판의 교과서를 보면,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항목에서 다루고 있으며, 역사의 큰 흐름 안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3줄 정도의 기술로, 다음과 같이 만주국은 등장하지만, 만주 사변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군부가 정권을 잡고 침략 전쟁을 감행하는 등 군국주의 체제를 강화했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여 만주국을 세운 후,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

집필자가 취재에 응해준 디딤돌출판의 교과서에서도, 일본 침략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를 싣고 만주국도 표시되어 있었지만, 만주 사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김육훈(勲) 태릉고교 교사는 교과서는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의 큰 흐름을 잡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항해 여러 민족들이 어떻게 싸웠는지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집필한 의도를 밝혔다.

고교 세계사교과서에서는 중학교 보다 설명이 자세해 졌고 만주 사변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금성출판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본은 장 제스()가 북벌을 진행하는 동안 세차례나 산동()에 출병하여 방해하였고 만주 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동부를 점거한 뒤 괴뢰 정권(만주국)을 세웠다

한국 역사에서 보면, 만주(満)는 항일 독립 운동의 거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런 관계로, 국사 교과서에서는 만주 사변에 대한 설명은 없어도 독립전쟁은 만주와 중국 본토를 근거지로 하여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일제의 중국 침략이 거세어지면서 만주(満) 지역 독립군 활동은 크게 제약을 받게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사쿠라이 이즈미 桜)

대만 -위만주국(偽満国) 이 만주국으로

대만 교과서에서는 만주 사변과 만주국에 대해서 중국사 외에 세계사에서도 유럽 전선에 호응한 일본의 중국 침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남일서국()의 국민 중학 사회에서는 10년 건설기의 내우 외환이라는 항목에서 1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10년 건설이란 장제스()에 의한 북벌 통일의 완성으로부터 항일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의 1928~37년을 가리킨다. 교과서에서는 10년 건국 황금의 10년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 사이의 내우란 공산당의 세력 확대이며, 외환이란 9•18 사변(대만에서의 만주 사변 호칭)을 가리킨다. 주된 기술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선양()성을 포격한 것이 9•18 사변이다. 다음 해, 일본은 동북 지방 전역을 점령하고, 퇴위한 청 황제 푸의()를 옹립하여 만주국을 만들어, 괴뢰 정권으로서, 중화를 가지고 중화를 제압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또한, 세계사에서는제2차 세계대전의 조사 학습항목에서 일본은 1931~37년 사이에 어떻게 중국 침략을 실시했는지 생각해 보자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예전의 대만 교과서나 현재의 중국 교과서와 비교해 두드러진 차이가 나는 것은, 만주국에 대한 표기이다. 1983년의 역사 과정 표준에 근거한 교과서에서는 위만주국(偽満国)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위(偽 가짜)라는 표기는 사라졌다.

남일서국()의 교과서 편집 지도위원인 초호이민(恵) 정치대학 역사학부 교수는 9•18 사변은 일본의 중국 침략의 시작으로서 중요한 사건이지만, 국민당은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과서에서의 기술은 적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교과서에는 푸의()가 일본의 군인과 고급관료에 둘러싸인 기념사진도 소개하며, 만주국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초() 교수는 1933년에는 많은 대만인이 만주국으로 돈 벌이를 떠났다라고 말하며, 대만의 역사로 봐도 만주국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무라 히로쓰구 )

[지식인 20명에 듣는다] 9.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10 대 사건은?

공산당 혁명을 낳은 중일 전쟁 - 기타오카 신이치()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의 역사를 형성하는데 있어, 중대한 의미를 가진 사건을 시대 순으로 뽑았다. 단, 변화라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지속적인 축적으로 일어나므로, 반드시 사건만인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의 사건은 둘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의적이라는 것에도 주의를 해두고 싶다.

첫 번째로,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아편 전쟁이다. 누구도 중국이 그토록 간단하게 서양에 진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아시아가 서양 근대에 대해서 아주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에서 큰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메이지 유신이다. 동아시아의 전통 사회가 외부의 압력에 반응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내부 발전의 계기로 삼아 근대국가를 만들어 갔다. 여기서 말하는 메이지 유신은 개국에서 부터 근대국가 성립까지의 프로세스를 포함한다.

세 번째는 러일 전쟁이다. 위에서 사건은 다의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러일 전쟁도 그렇다. 서양 문명을 몸에 익힌 비서양 국가가 서양 열강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전 세계의 피억압 국가에게 큰 충격을 준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한편,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한국 병합을 진행하며 식민지 대국으로 나아갔다.

네 번째는 중일 전쟁이다. 일본의 대륙으로의 팽창과 중국의 내셔널리즘이 부딪쳤다. 동시에, 중일 전쟁은 중국 연안부의 자본주의의 발전을 파괴해 버렸다. 그 결과, 공산당 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중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만약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시점에서 국민당은 공산당을 제압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큰 분기점이었다.

다섯 번째로는 태평양 전쟁과 원폭 투하를 들고 싶다. 태평양 전쟁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후발 제국인 일본이 영국과 미국에 정면충돌을 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세계사적으로는 일본이 의도하여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구미 열강의 후퇴가 있다. 태평양 전쟁의 논리적 귀결로써, 동아시아에서의 식민지 독립이 진행되었다. 또한, 원폭은 세계 군사상의 대혁명으로, 전쟁 본연의 자세를 결정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도 빠뜨릴 수 없다.

여섯 번째는 조선 전쟁(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이다. 이 전쟁이 없었다면, 중일 국교 회복과 -일본의 강화도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일곱 번째로는 일본의 전후 부흥과 고도성장을 들고 싶다. 군사적 발전 노선에서 좌절한 일본은 자유 무역 체제 안에서 정당한 경제활동에 의해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여덟 번째는 베트남 전쟁이다. 독립 운동과 냉전 사고가 부딪친 사건이다. 도미노 이론이 틀렸다는 것도 오늘날의 중요한 교훈이다.

아홉 번째로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의 결성과 발전, 그와 시기는 다르지만 한국과 대만도 경제발전을 통해서 중산계급이 대두되었고 이것이 민주화로 이어졌다.

열 번째는 중국의 개혁과 개방이다. 그 후의 중국의 발전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은 재차 말할 필요도 없다.

이상으로, 일관된 테마는 내셔널리즘, 사회주의, 경제발전, 이 세 가지다. 서양과의 만남으로 아시아의 내셔널리즘이 촉발되었고,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거기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루어 갔다. 다음은 내셔널리즘의 극복이 과제가 될 것이다.

(인터뷰: 사토 가즈오())

* 주 : 한국전쟁을 일본에서는 조선전쟁으로 표기한다. 여기에서도 화자의 표현 그대로 조선전쟁으로 표기한다.

약력

1948 년 생. 일본 정치 외교사가 전문. 중일 양 정부의 합의로 작년 12월에 시작한 중일 역사 공동 연구의 일본 측 단장.

내가 뽑은 10대 사건

(1) 아편 전쟁

(2) 메이지 유신

(3) 러일 전쟁

(4) 중일 전쟁

(5) 태평양 전쟁과 원폭 투하

(6) 조선 전쟁 (한국 전쟁)

(7) 일본의 전후 부흥•고도성장

(8) 베트남 전쟁

(9)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10) 중국의 개혁•개방

(* 년대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