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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참배후 방명록에 서명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참배후 방명록에 서명

Posted August. 16, 20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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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다.

종군위안부는 한국과 중국의 날조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지 61돌을 맞는 15일. 도쿄() 지요다() 구 야스쿠니()신사 앞은 오전 5시경부터 군국주의 플래카드를 손에 든 우익단체 회원들로 북적거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오전 7시 반 관저를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야스쿠니신사 안에는 술렁임이 번져나갔다.

10분 뒤 고이즈미 총리를 태운 관용차 행렬이 신사 안 전쟁미화박물관인 유슈칸()을 지나 도착전() 앞에 멈춰 섰다.

발 디딜 틈 없이 야스쿠니신사를 가득 메운 참배객들은 후원단체가 나눠 준 일장기를 흔들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검은 연미복 상의에 줄무늬 바지를 차려입은 고이즈미 총리는 미간을 찡그린 채 굳은 표정을 지으며 곧장 본전()으로 향했다.

평범한 양복 차림으로 일반인처럼 본전 바깥쪽 배전()에서 참배했던 지난해 10월보다 훨씬 더 거칠 것 없다는 듯 태연한 자세였다.

본전에서 참배를 마친 고이즈미 총리는 꽃값으로 개인 돈 3만 엔을 내놓고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적었다.

지난해엔 꽃값을 내지 않고 방명록 기재도 생략했다.

약 15분간의 참배 일정을 마친 그가 관용차에 오르기 위해 다시 도착전에 모습을 드러내자 참배객들 사이에서는 고이즈미 총리 만세,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환호와 격려가 터져 나왔다.

또 이날 야스쿠니신사에는 고이즈미 총리 외에도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나카가와 쇼이치() 농림수산상, 구쓰카케 데쓰오() 국가공안위원장, 여야 의원 등 지도층의 참배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의 외교 행위는 마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일중, 일한 관계는 붕괴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우려했다.

또 공동 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 대표는 총리에게 여러 차례 참배를 자제하라고 직접 말했다며 상징성이 큰 8월 15일에 참배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건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천광암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