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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현직 대통령 비망록

Posted December. 13, 200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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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이란 잊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틈틈이 적어 두는 기록이다. 회고록이 완결성을 지닌 반면 비망록은 숙성이 덜 된 메모 차원이라고 출판인들은 분류한다. 하지만 진실이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몇 년 전 한 전직 대통령이 회고록을 냈을 때다. 상당수 인사들이 자화자찬()이 심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정적()에게 책임을 떠넘긴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 원로 정치인은 참이 하나면 거짓이 아홉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회고록을 많이 내는 사람은 정치인이다. 정치적 비중이 컸던 인물일수록 그런 유혹을 많이 느끼고, 그 틈을 출판사 상술()이 비집고 들어선다. 얼마 전에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 노태우 정권 시절 있었던 남북 접촉과 3당 합당 등에 얽힌 얘기를 모아 책을 냈다가 진실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직접 당사자의 회고란 이처럼 객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법이다.

청와대 부속실에서 2년간 행정관을 지냈던 이진 씨가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이란 책을 냈다. 2002년 말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가 정치자금 비리를 털고 가기로 했다가 참모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일, 비리에 개입한 친인척에게 호통 쳤던 일, 2004년 봄 탄핵 전후 대통령의 심경 등 여러 일화()가 등장한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라는 섬과 국민이라는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아 봄으로써 섬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상식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탈() 권위에 앞장선 노 대통령의 인간적 모습이다. 또 하나의 현실 정치용 대통령 찬가()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대통령 비망록은 퇴임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임기 동안 있었던 일화나 비화()를 있었던 그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잘했던 일에 못지않게 잘못하고 부끄러웠던 일도 솔직담백하게 적어 한 시대의 교훈이 될 때 비망록은 가치를 얻는다. 이번 비망록은 나오기 전에 대통령과 비서진이 먼저 읽어 봤다니 애초부터 홍보물이었던 셈이다.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