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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천생연분

Posted November. 30, 200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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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TV의 낱말 맞히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할아버지에게 사회자가 던진 단어는 천생연분(). 여러 설명을 했지만 할머니가 이 말을 떠올리지 못하자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손가락 넷을 펴 네 글자임을 암시했다. 그제서야 할머니가 자신 있게 답했다. 평생 웬수(원수).

우리 선조들은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을 하늘의 뜻으로 여겨 천정배필()이라고 했고, 오순도순 잘사는 사이를 천생연분이라 했다. 당시에는 이혼이 거의 없었다. 하늘이 맺어 준 짝과 갈라서는 것은 하늘에 대한 거역이라는 생각도 작용했을 법하다. 조선시대 최고법전인 경국대전()에 이혼 조항이 없는 것을 천생연분 사상과 연결해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서양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아내란 청년에겐 연인이고, 중년에겐 친구이며, 노인에겐 간호원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거리나 여행지에서 다정하게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결혼식장에 나란히 선 초짜 부부치고 자신의 배우자를 천생연분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갈라서는 부부가 많은 게 현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3만9365쌍이 이혼한 우리나라다.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국무총리에 대해 (그와 나는) 천생연분이고 (나는) 참 행복한 대통령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대통령급 총리의 든든한 배경을 알 것 같다. 이 총리는 지금 전세 비행기를 타고 중동을 순방 중이다. 이날 노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 국력은 세종 때 다음으로 융성한 세대라고도 했다. 이 총리가 지난달 독일을 방문했을 때 교포들 앞에서 나라가 이미 반석 위에 있다고 한 말과 앞뒤가 척척 맞다. 천생연분인 대통령과 총리의 태평성대()에 수많은 국민은 세금, 실업, 파산, 그리고 가족 붕괴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이들 국민과 대통령은 천생연분이 아닌가 보다.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