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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주국방의 말 값 국민에게 던져지는 청구서

[사설] 자주국방의 말 값 국민에게 던져지는 청구서

Posted November. 08, 200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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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한미 간의 신속한 군수() 지원을 위해 새 협정을 체결하자고 6월 미국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쟁 발발에 대비한 한미 간 긴급 소요 부족품 목록(CRDL)은 지난해 말 폐기됐고 전쟁예비물자(WRSA) 계획은 2006년 말 폐기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새 협정 거부는 전쟁 초기 상황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한국이 전적으로 지라는 통고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자주국방의 말 값이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CRDL과 WRSA는 대부분 전시()에 대비한 탄약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탄약은 10여 일간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분량에 불과하다. 2020년까지로 추산되는 자주국방 예산 621조 원에 탄약 항목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결국 정부는 별도 예산으로 전시 대비 탄약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5조 원대의 WRSA를 인수한다고 해도 미국이 또 다른 부담을 한국에 지우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미 2년 전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할 증원 전력() 규모를 재평가하겠다고 한국에 통고했다. 동맹에서 갈수록 멀어지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더는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작아질 때 생기는 공백은 자주국방을 외쳐 온 정부가 메워야 하고,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도 문제다. 본보가 4월 미국의 WRSA 폐기 방침을 보도하자 국방부는 WRSA가 폐기돼도 유사시 한국군의 전쟁 수행 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달 뒤 새 협정 체결을 미국에 요구했다. 국민에게는 안심하라고 하면서 뒷전으로는 미국에 매달리는 이중적인 행태는 안보 불안을 더욱 키운다.

노 정부는 실속 없는 자주국방 타령부터 중단하고 이완된 한미동맹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보는 안보대로 취약해지면서 국민 허리만 더 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