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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 주사

Posted September. 24, 20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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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법원장이 향우회에 참석했다. 고향이 배출한 큰 인물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알아두면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눈치를 살피던 지역의 한 원로가 대법원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자신과 관련된 재판을 잘 봐 달라는 민원이었다. 1999년 9월 취임 직후 최종영 대법원장이 겪은 이야기다. 그 후 그는 동문회 같은 사적 모임에 아예 발을 끊은 것은 물론 점심도 대부분 집무실에서 혼자 해결했다.

법관이 치러야 하는 가장 큰 희생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퇴임한 한 대법관은 법관은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고독은 달갑지 않은 어둠 같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면 평소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은밀한 사물의 존재까지 알아보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3일 6년 임기를 마친 최 전 대법원장이 법절차와 사법적 판단에 불복하는 분위기에 일침()을 놓았다. 그는 퇴임사에서 최근 여론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고 폄훼하는 행동이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1965년 판사로 임용된 뒤 40년간 은둔자의 원칙을 지켰고, 일처리가 꼼꼼해 최 주사()란 별명을 얻은 그가 대놓고 법치주의의 위기를 지적한 것이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사법부 권위에 대한 정치권의 도전은 끝이 없었다.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선거법 위반사건 판결이 잇따르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사법부의 편파적 자의적 법해석으로 우리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당 지도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낯 뜨거운 일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일부 시민단체와 몇몇 여당 의원은 헌법재판소 폐지를 들먹이기도 했다. 수도이전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한 반격이었다. 사법부의 노력만으로 법치가 확립되지는 않는다. 새겨들어야 할 최 주사의 마지막 당부다.

송 대 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