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결과로만 판단하겠다. 환영도, 평가절하도 할 수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 간 회동 결과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즉각적인 평가를 유보했다. 서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국무부는 17일 한국 언론사의 워싱턴특파원들을 국무부로 초청해 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가급적 말을 아낀 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전날 발언을 재차 강조했다. 날짜를 잡기 전에는 데이트가 성사될지 알 수 없다(until we have a date, we dont have a date)는 것이었다. AP통신은 익명의 미 정부 인사를 인용해 북한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미 언론도 평가를 유보한 채 정 장관의 발표내용만을 전달했다. LA타임스는 부시 행정부가 조심스러워한다고 썼다.
이와 마찬가지로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18일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진의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주도하는 강경그룹은 북한이 마치 회담장에 복귀하는 것을 뭔가 크게 양보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집을 사고파는 거래를 앞두고 집 주인이 계약서 작성을 위해 부동산중개소를 방문(회담장 복귀)하는 조건으로 1000만 원을 별도로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워싱턴엔 많다고 귀띔했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오히려 김 위원장의 요구 내용이 과거보다 강도가 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동안 주한미군 철수, 북-미 간 국가 대 국가의 군축 협상,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요구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북한을 파트너로 존중해 달라고 한 것을 보면 북한이 현재 뭔가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결국 김 위원장이 다소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드라이브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게 강경파들의 생각인 듯하다.
그 때문인지 김 위원장이 직접 7월 회담 복귀란 말까지 꺼냈으나, 미 당국은 꿈쩍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북한의 존중 요구에 대해 새로운 발표나 제안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무부 관계자는 17일 간담회에서 미국은 북한이 존경을 받을 일을 한 뒤에라야 존경심을 표시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일각에서는 북한이 7월 중 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김 위원장의 말 자체가 법이요, 전략인 북한에서 지도자의 발언이 흐지부지 되는 일은 상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주권국가 발언에 대해 그 정도면 사과한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회담 복귀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승련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