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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저린 공직자들

Posted June. 11, 200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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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며칠 전 과장님이 한 여인과 여관에 들어가는 것을 카메라로 찍어 두었습니다. 사진을 공개해 일이 커지기 전에 200만 원만 쓰시죠.

지난달 13일 오전 대전 모구청의 A 과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 등을 제시하지 않아 마치 나는 지난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식이었다.

그런데 A 과장은 이 묻지마 협박에 갑자기 말투가 고분고분해지더니 바로 부쳐줄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말했다.

협박자는 같은 수법의 범죄로 복역한 뒤 2003년 8월 출소한 김모(49) 씨.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전국 전화번호부 관공서 페이지에서 눈이 멈추는 기관의 간부를 무작위로 메모해 두었다가 전화를 걸어 모두 53명으로부터 1인당 100만500만 원씩 모두 1억3000만 원의 돈을 뜯어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불륜 장면을 카메라로 찍지도 않은 채 무작위로 협박전화를 건 것으로 밝혀졌다. 통신추적 결과 그는 지난 3개월 동안(기록보관분)에만 2대의 휴대전화로 관공서에 1000여 통의 전화를 건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이 강경하게 나오면 전화를 끊고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며 입금받은 후에는 테이프를 폐기했으니 안심하라고 전화하는 여유도 보였다.

주로 정부기관이나 자치단체 공무원을 표적으로 삼았으나 경찰도 1명 입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해당 경찰관이 한 단체장의 협박전화 상담을 받고 수사 미끼로 입금했으나 단체장이 다시 수사를 만류해 중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현재 입금자 가운데 최고위직은 자치단체장 한 명과 서기관(4급)으로 밝혀졌으며 자치단체 산하 농산물도매시장 소장과 농업기반공사 소장, 조달청 지역소장, 읍장 등이 포함돼 있다.

김 씨는 경찰에서 일부 공무원들은 자신의 이름도 모르고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잘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0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명훈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