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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떤 남편

Posted April. 08, 200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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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리 과묵한 그(53)는 아내가 1남 1녀를 낳은 뒤 신장질환을 앓아왔지만 평소 별다른 애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아내를 위하는 일은 늘 우선이었다. 그는 수시로 투석을 해야 하는 아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일본으로 데려갔다. 두 차례나 일본 연수를 허락해 준 직장의 배려가 고마웠다. 1998년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귀국했던 그는 2년 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내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올해 초 그는 14년 동안 신병에 시달려 온 아내를 위해 자신의 콩팥 한 개를 이식해 주기로 결심했다. 아내의 병세가 악화된 데다 불어나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아들이 오래전부터 언제든 엄마를 위해 내 신장을 떼어 주겠다고 다짐했지만 군 복무를 앞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검사 결과 다행히 부부간 신장이식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솔직히 그는 두려웠다. 특히 한 친구로부터 싱가포르에서 부부간 신장이식 수술을 하다가 남편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초췌해진 남편을 본 아내가 수술을 며칠 앞두고 내가 좀 더 참아 볼 테니 이식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을 때 내심 흔들렸으나 태연한 척 물리쳤다. 수술 전날에는 아들을 불러 엄마 아빠가 둘 다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식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다. 그가 수술 후 옆 병상의 아내에게 한 말은 개않나(괜찮으냐)라는 사투리 인사가 고작이었다. 3개월가량 서울에서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내를 남겨 두고 그는 다음 주 초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제 이혼당할 일은 없겠다는 주위의 농담에 그는 해병대 출신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가 결혼 30년이 되도록 마누라에게 해준 일은 콩팥 두 개 중 하나를 떼 준 것뿐이라며 씩 웃었다. 몸 고생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그의 얼굴이 유난히 환해 보였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