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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온천 외교

Posted December. 15, 200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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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정상이 함께 온천욕을 즐기면 그림이 되지 않을까? 17, 18일의 한일 정상회담 일정에 온천욕을 포함시키자는 일본 측 제안은 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발상에서 나왔다. 하지만 논의 끝에 없던 일로 됐다. 실무적인 준비보다는 미묘한 국민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중국 수뇌부에 번번이 면박당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서는 또 다른 이웃인 한국 대통령과 격의 없는 우정을 연출해 중국을 견제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상회담 장소인 규슈() 가고시마() 현의 이부스키()는 19세기 후반 정한론() 주창자들의 근거지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관광지로만 치자면 수려한 자연경관과 탁월한 온천수가 그만이다. 활화산에서 내뿜는 화산재의 영향으로 온천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고, 해변의 검은 모래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래찜질 온천욕이 가능하다. 모래에 각종 광물질이 녹아 있어 체내 노폐물 배출 등에 각별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온천 외교는 일본이 정상 간의 만남에서 분위기를 호전시킬 필요가 있을 때 꺼내드는 회심의 카드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온천에서 전통 의상 차림으로 직접 술을 따르며 대접했다. 레이건-낸시 부부의 감동은 이후 두 정상 이름의 앞 글자를 딴 론야스 미일 동맹의 토대가 됐다. 친분이 두터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다음 번 만남 장소도 아마 온천이 될 것이다.

온천욕의 효과가 뛰어나다고 해도 외교 현안을 압도할 수는 없다. 1997년 한일 정상은 온천 관광지 벳푸()에서 만났지만 일본 정치인의 역사 망언()이 돌출하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민감한 현안이 많은 한일 관계는 상호존중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무리 이벤트를 그럴싸하게 꾸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 나라 정상이 마음 편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동반자를 위하여.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