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준문맹

Posted November. 21, 2004 22:56   

中文

문자()의 발명은 인류 문명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지식을 전달하고 의사를 소통할 수 있게 되어 효율적인 정보유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정보혁명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문자의 해독이 더욱 중요해졌고, 그러기에 세계 모든 국가에서는 국민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쉽고 과학적인 한글에 힘입어 성인 문맹률이 2% 정도로 세계 최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꼭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글을 읽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유네스코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준문맹()이라 정의하고 이의 퇴치도 중요하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준문맹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오히려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글을 보면 그 논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무조건 배척하고 왜곡을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준문맹 현상은 심지어 지식인이라고 자칭하는 계층에까지 전염되고 있다.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상대편 진영에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글은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으니, 문자가 시간과 공간을 넘는 의사소통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이 영화를 보면서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하고 물어보듯이 모든 일을 이분법()으로 재단하니, 지성의 퇴화만이 아니라 정신연령의 퇴보까지 일어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글도 제대로 못 읽고 정신연령도 낮아지는 이유는 역시 막 가는 정치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편 가르기를 표 결집의 수단으로 쓰고, 필요하면 지위에 관계없이 막말을 해대는 정치가들 때문에 사회 전체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인격이 떨어지는 것이야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격()이 떨어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오 세 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sjoh@plaza.snu.ac.kr